이흥배 씨(왼쪽 두 번째)가 서울 수색동 사랑방에서 중증 장애인 식구 3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이흥배 씨(왼쪽 두 번째)가 서울 수색동 사랑방에서 중증 장애인 식구 3명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생면부지의 중증장애인 수명을 거둬 24년째 봉사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외부의 도움이나 지원도 마다하고 순전히 본인이 좋아서 한다는, 기인(奇人) 수준의 ‘봉사 천사’다. 서울 은평구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흥배 씨(45)가 주인공이다. 이씨는 최근 ‘제4기 국민추천포상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씨가 ‘식구’라고 부르는 장애인은 9명이다. 서울 은평구 수색로 12가길의 작은 전셋집 ‘이웃과 함께하는 사랑방’에서 부양하는 장애인 4명 그리고 일산·가양동 등에서 오가는 5명이다. 이 중 거동이 자유로운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모두 이씨와 인연을 맺은 지는 20년 이상 됐다.

은평구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작은 합기도 도장을 운영했다. 봉사의 길로 들어선 건 응암동의 한 교회 야학에 우연히 가게 되면서다. “혼자 못 걷는 노인분을 한강에 모시고 갔는데, 태어나서 처음 한강을 봤다며 기뻐서 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많은 사람에게 당연한 게 이분에게는 그렇게 소중하다니….” 이후 교회 등을 오가며 장애인 나들이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2004년에는 400여만원을 털어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을 마련해 거처조차 없는 장애인 4명을 모셨다. 한 칸은 동네 노인들을 위한 경로당으로 쓰고 있다.

이씨는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는 미화원으로 일하고, 이후에는 가구 운송, 파지 수집 등 닥치는 대로 일해 돈을 번다. 이 중 적지 않은 돈이 장애인 부양에 든다. 아내와 중·고생 자녀 2명을 둔 가장으로서 애로사항이 없냐고 물었다. “결혼 이전부터 하던 일이라…. 집사람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지난달에는 식구들을 데리고 경기 양평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그동안 식구들과 전국을 누볐고, 풍찬노숙을 해도 식구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10여년간 화물차 기사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직접 소유한 대형 버스를 운전한다. 동네 노인들이 야유회를 갈 때도 이 버스를 활용한다. 그런데 유지비가 많이 들어 골칫거리라고 했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집주인이 올려버린 전세금도 고민거리다.

이씨는 법인 등으로 전환해 중앙부처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자금 사정이 넉넉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의 후원을 유치할 계획이 없다. 소득공제를 할 수 없어 기업 후원금 유치도 불가능하다. “외부 돈을 받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실적을 내거나 돈을 더 끌어오기 위한 장사를 끝없이 해야 하잖아요. 그러면 초심이 사라집니다. 식구들도 외부 시설보다 여길 가장 좋아해요.” 그는 또 “이분들과 함께한 뒤 집에 돌아가면 더 넓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족을 대할 수 있어 오히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누워만 있어야 하는 중증장애인 이모씨(53)의 변을 직접 장갑을 끼고 수습한다. “무슨 사명감으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물으니 “시원해하는 모습을 볼 때만큼 행복할 때가 없다”고 답했다. 마치 봉사를 하러 태어난 것 같은 이씨, 그러나 그에게도 인간적인 서운함이 있다.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한 푼도) 없더라고요. 식구들하고 나들이 한 번 갈 돈이라도 나왔으면 좋았을 걸….”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