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거래소의 빛바랜 상장 실적
한국거래소는 올해 100개 이상의 기업을 상장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6개, 코스닥시장에서 66개 등 72개사를 상장시킨 데 이어 올해는 신규 상장기업 수를 40% 가까이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에도 100개 기업을 상장시키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2013년 상장기업 수(41개)의 2배가 넘는 목표치였다. 한국거래소 담당자들은 목표를 채우기 위해 증권사와 벤처캐피털 등을 돌며 신규 상장사 유치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2013년에 비해 신규 상장기업 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기업인수목적회사(스팩)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스팩은 다른 비상장사를 합병해 우회상장시킬 목적으로 설립되는 일종의 서류상 회사다. 지난해 상장기업 가운데 36%인 26개가 스팩이었다. 2013년 상장한 스팩(2개) 수의 13배였다. 스팩을 제외하면 지난해 상장기업 수는 2013년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지난해 스팩 상장이 급증한 데엔 한국거래소의 요구가 일부 작용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상장기업 목표 수를 달성하기 위해 증권사들에 스팩을 많이 만들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스팩은 증권사 등 발기인이 설립 신청서를 제출하면 별다른 심사 없이 증시에 입성할 수 있다. 단기간에 상장기업 수를 늘리는 데는 ‘특효약’인 셈이다.

취업준비생들의 ‘스펙 쌓기’에 빗대 한국거래소가 상장 실적을 올리기 위해 ‘스팩 쌓기’에 치중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증권사의 기업공개 담당자는 “거래소에서 연락해 ‘스팩을 더 만들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부담이 컸다”고 토로했다.

부작용도 뒤따랐다. ‘스팩 홍수’ 속에 대우스팩2호 등 6개 스팩은 일반 공모 청약에서 청약 미달 사태가 났다. SK제1호스팩과 골든브릿지2호스팩은 아예 공모를 철회했다. 상장한 스팩들도 설립 후 3년 이내에 합병할 회사를 찾지 못하면 상장 폐지된다. 피해는 투자자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지난해 스팩이 비상장사를 합병해 상장시킨 사례는 인증 전문 보안 업체인 케이사인 한 건에 불과했다. 한국거래소의 상장 활성화가 ‘숫자 채우기’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임도원 증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