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KDI까지 나섰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금리를 더 인하하라는 권고다.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전선이 형성된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한은이 발표한 ‘11월 소비자 동향조사’를 보면 소비심리는 14개월 만에 최악이다. 41조원 규모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사상 최저수준으로 금리가 인하됐는데도 침체된 경기가 꿈쩍을 않는다. 당연한 듯 캠퍼 주사를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돈 풀어 경기를 살리자는 주장은 곳곳에서 불거진다. 하지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일본이 20년 동안 해왔던 낡은 정책이요 미국이 이제 거둬들이고 있는 정책이다. 한경 보도에 따르면 올 들어 회사채 발행 잔액은 192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4% 줄었다. 초저금리에도 기업들이 투자보다 빚갚기에 급급하다는 얘기다. 금리 수준이 아니라 수익구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과 한계기업이 속출하는 게 근본 문제다. 어제 발표된 통계청 자료를 봐도 국내 기업의 지난해 순이익률은 3.9%, 최근 5년 사이 최악이다. 과당경쟁 구도 속에 밑도끝도 없이 좀비기업들이 물귀신 작전을 펴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없이는 금리정책의 실효성도 떨어진다. 부실이 정상기업에까지 전염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그게 정공법이다. KDI도 며칠 전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했다. 기업 100곳 중 15개가 은행이자도 못 벌 정도로 부실이 심각하다. 돈 풀어 경기를 살릴 수 있다면 성능 좋은 화폐 발행기만 갖추면 될 것이다. 경제정책까지 포퓰리즘에 오염시킬 수는 없다. 금융 완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풀려나온 돈이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수구를 청소하고 물길도 정비해야 하는 것이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규제혁파를 통한 생산성 혁신이 아니고는 경제를 살릴 수 없다. 최근의 반짝 부동산경기도 그렇지 않았나. 돈 풀어 경기 살리자는 부두 경제학을 누가 주장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