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추덕영 기자=ch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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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과 텐센트는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공룡이다. 살벌한 경쟁을 펼치던 두 회사가 최근 의기투합했다. 한국의 신생 게임업체인 네시삼십삼분에 공동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 지분 25%를 넘겨받으면서 1300억원을 지급했다. 대박의 주인공은 창업자인 권준모 네시삼십삼분 이사회 의장. 원래 경희대 심리학과 교수였다. 이력이 독특하다는 질문에 그는 “심리학은 게임 등 정보기술(IT)업종과 아주 잘 어울리는 학문”이라고 했다. 권 의장뿐만 아니다. IT벤처업계엔 이문주 모두의지도 대표와 이동호 폰플 대표 등 심리학 전공자들이 쉽게 눈에 띈다.

게임·스마트폰 곳곳에 심리학 적용

심리학이 재조명받고 있다. 순수 기초학문이라는 간판은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인문학과 첨단기술의 가교’, ‘첨단기술 아이디어의 수원지’. 심리학의 요즘 좌표다. 심리학의 잠재력에 가장 먼저 눈을 뜬 곳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다. 융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가장 민감하기 때문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의 이용자환경(UX)을 설계하는 분야에 심리학 전공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전체 인력의 10% 이상을 심리학과 출신으로 채웠다. 2~3년 전에 비해서는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삼성전자의 최신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 엣지’에도 ‘행동유도성(affordance)’이라는 심리학 개념이 적용됐다. 행동유도성은 애플에서 부회장까지 지낸 심리학자 도널드 노먼이 1990년대 발표한 개념으로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사물들은 특정 행동을 유발하도록 디자인돼 있다’는 점에 착안한 디자인 이론이다.

페이스북 저커버그 심리학 복수전공

心理學의 재발견
심리학 전공자에 대한 수요는 전방위적이다. 김정현 PCA생명 HR상무는 “인문학적 상상력에 IT와 경제 등에 대한 이해력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선호하는 기업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서울 주요 대학 심리학과의 졸업생 취업률이 최근 들어 상승세를 보이는 이유다. 이미 입시 전선에서는 이런 변화를 감지했다. 지난 9월 치러진 연세대 수시전형에서 인문계열 최고 경쟁률(63.7 대 1)을 기록한 곳은 심리학과였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심리학의 향기가 더욱 진하다.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가 대표적이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복수전공했다. 페이스북의 성공 포인트로 꼽히는 ‘좋아요’ 버튼도 심리학 지식의 응용이다. 고려대 심리학과 출신인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은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매사에 호불호 딱지를 붙이기 좋아하는 인간심리에 착안한 것”이라며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등 최근 각광받는 첨단산업도 심리학 지식 없이는 단지 숫자나 기술의 나열일 뿐”이라고 말했다.

로히트 바르가바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가 들고 나온 ‘호감경제학(Likeonomics)’도 뿌리는 심리학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가격 기술 등의 요소보다 브랜드 디자인 등 심리적 만족감에 더욱 비중을 두는 현상을 분석한 이론으로 애플의 아이폰 열풍 등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올들어 관련 도서 186종 출간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높다. 베스트셀러 목록에는 빠지지 않고 심리학 서적이 포함된다. 올해 발간된 심리학 관련 도서만 186종에 이른다.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등이 최근 주최한 ‘심리학 콘서트’에는 온라인으로만 광고를 했는데도 1500여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 등 심리학으로 대중적인 스타 대열에 합류한 경우도 적지 않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선진국이 될수록 개인의 삶이 중요해지고 자연스레 심리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안재석/임기훈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