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왕중추와 '디테일의 힘'
쌀집 점원으로 일하던 왕융칭(王永慶)은 16세 때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 그곳에는 이미 30여개의 쌀가게가 있어서 살아남기가 버거웠다. 고전하던 그는 쌀의 품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방법을 찾아 나섰다. 그때만 해도 추수한 벼를 길에서 말렸기 때문에 잔돌이 섞여 밥할 때마다 쌀을 일어 돌을 골라야 했다. 그는 동생들을 동원해 돌을 골라낸 뒤 팔았다. 이 차별화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곧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 그는 집집마다 쌀독 크기와 식구 수를 파악했다가 쌀이 떨어질 때쯤 미리 갖다 줬다. 특히 쌀독에 남은 쌀을 다 퍼낸 뒤 새 쌀을 붓고 그 위에 남은 쌀을 부어 줬다. 묵은 쌀의 변질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작고 섬세한 배려 덕분에 그는 대만 제일의 갑부가 됐다.

‘100-1=0, 100+1=200 공식’

‘디테일 경영’의 대가인 왕중추(汪中求) 중국 칭화대 명예교수는 베스트셀러 《디테일의 힘》에서 이런 사례와 함께 ‘100-1=0, 100+1=200 공식’을 일러준다. 1%의 부족 때문에 ‘0’이 될 수도 있고, 1%의 정성으로 ‘200’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쌀장수 왕융칭은 ‘100+1=200’의 경우다.

반면 ‘100-1=0’의 예도 많다. 중국의 한 냉동새우 판매 회사가 유럽에 1000t을 수출했다가 항생물질 0.2g이 발견돼 손해배상까지 한 사건이 있었다. 50억분의 1 때문에 치명타를 맞은 것이다. 왕중추 교수는 “사랑받는 사람이나 상품은 다른 사람이나 경쟁상품이 갖지 못한 1%의 차이를 갖고 있는데 이 1%의 차이가 곧 디테일의 힘”이라고 설명한다.

3년 전 여름, 왕 교수를 서울에서 처음 만났다. 강연차 한국에 온 그와 인터뷰 후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그는 말수가 적고 술도 즐기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대화가 밍밍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아주 작은 대목에서 그가 반색했다. 무슨 말끝에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는 것은/ 이 몸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라네’라는 소동파의 시 한 구절을 인용했더니 자기 고향이 여산이라며 아주 반가워했다. 한 번 말이 트이니 일사천리였다. 동갑내기인 우린 그날 밤 친구가 됐다.

큰 산보다 신발 속 모래가 문제

이듬해에는 중국에서 만났다. 상하이교통대(上海交通大)에서 둘이 릴레이 강연을 마치고 북한식당에 갔는데, 앉자마자 그가 ‘원샷’을 권했다. 빈속이라 손사래를 쳤더니 “첫잔은 우리 인연이 잘 풀리도록, 마지막 잔은 참 만족스러웠다는 뜻으로!”라며 먼저 비웠다. 그날 마지막 잔까지 좍 비운 그가 “사실은 담낭을 절제해서 술을 못 마시는데, 오늘 특별한 날을 위해 조금씩 몸을 만들어왔다”고 털어놨다. 온몸으로 보여준 디테일의 배려에 감동이 밀려왔다.

이런 게 ‘1000만부 작가’의 힘일까. 그는 요즘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섬세해야 큰일도 대담하게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가 경영난에 빠진 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1년여 만에 연매출을 23%나 늘린 비결도 “큰 것보다 작고 섬세한 요소들을 먼저 챙긴 것”이라고 한다.

경제가 어렵다고들 난리다. 나라 밖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전 세계가 출렁거릴수록 ‘1%의 차이’는 더 중요해진다. 최근 포스코를 비롯한 국내 기업 CEO들이 임직원 회의에서 ‘디테일의 힘’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은 먼 곳에 있는 산이 아니라 신발 안에 있는 작은 모래 한 알”이라고 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