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造船산업, 절박함이 사라졌다
우리 조선산업이 50년 현대 조선 역사상 최악의 위기에 처했다. 제조업 전반의 위기 중에서도 조선업의 침체는 다른 업종에 비해 유난히 두드러지고 깊다. 한국 조선의 대표 주자인 현대중공업은 2008년 시가총액 4위(19조원)에서 올해 24위(10조7000억원)로 주저앉았다.

국제 경기 후퇴에 더해 중국과 일본의 공세가 거세다. 한때 몰락할 듯 보였던 일본 조선은 최근 엔저를 이용한 가격경쟁력과 5사 체제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내세우며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선박금융을 선가의 최대 80%까지 이자율 1%에 제공하는 등 일본 정부의 지원사격도 한몫한다. 올 들어 9월까지 일본의 수출선 수주 실적은 지난해 동기보다 20% 이상 늘어났다. 중국도 같은 기간 중 신조선 수주 실적이 작년 동기 대비 38%나 증가했다. 중국 정부는 국영 조선소를 통폐합하고 우량 조선사를 중점 지원하는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에 나섰다. 대형화와 기술력 집결을 도모한 결과 한국과 규모 면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으며 액화천연가스(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선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한·중·일 삼파전에서 상대적으로 선가가 높고 정부 지원이 미약한 한국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기본인 벌크선을 버릴 수 없고, 친환경 고부가가치선 및 해양플랜트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의 적이다. 작금의 현대중공업 사태는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 조선 업계 전체에 내리는 절박한 적색경보다. 방만한 경영과 판단 미스로 사태를 악화시킨 경영진과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개인의 이익을 앞세우는 노조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지금은 내부에서 갈등하고 대립할 때가 아니라 온 힘을 모아 주변 조선국과 경쟁해야 할 때다.

필자는 1960년대 중반에 박정희 대통령 초대경제수석비서관과 해사행정특별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한국 조선산업의 기틀을 닦았고, 60년간 현역 조선인으로 일하며 역사의 현장을 지켰다. 불모지에서 시작한 우리 조선은 반세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발전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어디에서도 조선 선각자들의 담대한 도전정신을 찾아볼 길이 없다. ‘쓰레기통에서는 장미가 필 수 없다’는 전 세계의 비아냥 속에서도 세계 최대 도크를 갖춘 초대형 조선소를 짓겠다고 나서던 배짱, 무모할 정도로 일관되게 밀어붙여 오늘을 이뤄낸 뚝심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계 정상에 올라섰다는 교만한 마음에서 긴장감이 떨어진 것은 아닌가.

정부도 마찬가지다.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다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이 터져서야 뒤늦게 나서려니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미봉책이 된다. 장기적 안목으로 국제 시황을 예측해 거시적인 정책을 마련하고 이끄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여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다른 국가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선박금융 및 연구개발(R&D) 지원도 포함된다. 더 늦기 전에 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서 행동에 나서주길 바란다.

메이저 조선소들 중 어느 한 곳만 쓰러져도 한국 조선은 죽고 만다. 정부, 기업, 조선인들 모두가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상식과 양식을 회복해 힘을 합쳐야 한다. 물리적인 어려움은 정신이 바로 서면 극복해 나갈 수 있지만 정신이 바로 서지 않으면 해결책은 없다. 앞으로 50년, 100년 뒤 후손들에게 물려줄 타임캡슐에 조국에 대한 우리의 헌신만큼은 담을 수 있어야겠다. 이제 잠시 멈춰서 안팎을 재정비해 행동에 나서야 할 때다. 울산과 부산, 거제,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에 다시 한 번 환하게 불을 밝히자.

신동식 < (주) 한국해사기술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