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년2개월 만에 장중 달러당 1100원대로 올랐다. 엔화에 동조해 원화도 달러 대비 약세를 거듭하고 있다. 일본이 소비세 추가 인상을 미룰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엔·달러 환율은 7년 만에 최고치를 다시 썼다.

12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4원40전 오른(원화 가치 하락) 달러당 1096원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해 9월5일(1098원40전) 후 가장 높다. 오전 한때는 달러당 1102원90전까지 올랐다. 장중 달러당 1100원대를 나타낸 것은 작년 9월5일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환율이 급락해 1000원 선 붕괴를 우려할 정도였다.

하지만 엔저 우려가 심해지면서 원화 가치도 따라 내리기 시작했다. ‘원·엔 동조화’는 지난달 말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 완화를 발표한 뒤 더 뚜렷해졌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서만 27원50전(2.6%) 급등했다.

"위험선호 심리 약화…달러 외 통화들 동반 약세"

이날 원·달러 환율을 1100원 선 위로 끌어올린 힘도 엔저였다. 엔·달러 환율은 소비세 추가 인상 연기설이 나오면서 전날 116.11엔까지 치솟았다. 2007년 10월18일 이후 7년1개월 만의 최고치였다. 12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소비세 증세 연기 결정 보도에 대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도쿄 외환시장 내 엔·달러 환율은 소폭 하락해 115.3엔대(오후 3시 기준)에서 거래됐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이 최근 “엔화와 원화가 동조화해 움직이도록 하고 있다”고 발언한 뒤 원·엔 환율은 100엔당 950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한 경제연구소 전문가는 “시장에서 기준으로 삼았던 100엔당 1000원 공식이 달라졌다”며 “이제 원·달러 환율의 최대 변수는 엔화가 얼마나 내리느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위원은 “기존엔 수출업체의 달러 매도가 수급 열쇠를 쥐고 있어 환율 하락 압박이 컸다”며 “최근 환율 방향에 ‘베팅’하는 투기세력이 돌아와 참가자들이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기재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통화 급변동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채권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여전히 들어오고 있고 펀더멘털에도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원·엔 동조화에 대해서는 “정부가 환율을 그런 쪽(동조화)으로 관리하겠다는 건 아니다”며 시장의 과도한 믿음을 경계했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위험선호 심리가 약해지면서 달러 외의 통화들이 동반 약세”라며 원·달러 환율의 단기 고점을 1104원으로 제시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내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 인상안을 파기하고 중의원을 해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자민당이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양적 완화 기조가 이어지면서 엔화 가치가 더 하락할 수 있다.

김유미/임원기 기자/도쿄=서정환 특파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