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人터뷰] "재즈의 고향서 들었던 '남도 시나위'가 국악 인생 이끌었죠"
“전남 진도에서 만가(상엿소리), 강강술래, 남도 들노래, 씻김굿 같은 무형문화재를 계승할 사람이 없어요. 몇 안 되는 할머니들마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지….”

외국인 최초의 서울대 국악과 교수인 힐러리 핀첨 성 교수(43)의 파란 눈이 촉촉해지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말투에서 진도 민속음악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뚝뚝 묻어나왔다. “해외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 전통음악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늘어나는데, 한국 젊은이들은 점점 국악을 멀리하고 있다”며 국악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무엇이 벽안(碧眼)의 미국인 여성을 한국으로 이끌어 국악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도록 했을까. 세 자녀를 이땅에서 키우는 ‘워킹맘’ 성 교수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국악과의 운명적 만남

연구실에 들어서자 각종 악기와 그림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외국인 국악과 교수답게 서양 악기인 피아노와 거문고 해금 장구 등 한국 전통악기가 같이 있었다. 벽엔 누런 고지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인사동에서 산 ‘천하도(天下圖)’라고 했다. “중국을 위주로 세계를 그려서 그런지 미국은 없다”는 말에서 모국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성 교수는 1971년 미국 남부 테네시주의 주도(州都) 내슈빌에서 태어났다. 1970~1980년대 테네시주는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했다. 대부분 백인 아니면 흑인이었고 아시아계는 자동차 공장을 운영하는 일본인 몇 명뿐이었다. 대신 남부는 음악적 감수성을 기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남부는 로큰롤과 재즈의 발상지다. 그중에서도 내슈빌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어린 시절 바이올린이나 첼로같이 활로 연주하는 악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에서 처음엔 바이올린을 전공했죠.” 바이올린 연주가를 꿈꾸며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점차 인류학과 사회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이올린을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기 때문이다. 대신 음악을 인류학적 관점에서 공부해 보기로 했다.

국악을 접한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인디애나대 석사과정 시절인 1997년께 굿이나 샤머니즘이 치료학적으로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지에 관심이 생겼다. 1970년대부터 한국을 오가며 한국민속학을 연구해온 지도교수는 한국의 무속음악을 알아보라고 권했다. 당시 인디애나대가 있는 블루밍턴은 주변이 옥수수 농장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도시였다. 그곳에 하나뿐인 음반가게에서 그는 남도 시나위, 심청가, 궁중음악 등 한국 전통음악이 담긴 CD를 찾아냈다. “지금도 그 조그만 도시에 남도 시나위 같은 음악을 담은 CD가 있었다는 게 너무 놀라워요. 역시 국악은 제겐 운명이었을까요(웃음).”

그는 남도 시나위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소리를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받았다. 대체 어떤 악기가 이런 소리를 내는지 궁금했다. 유튜브도 구글도 없던 시기라 어떻게 하면 한국음악을 더 구할 수 있을지 고민이 컸다. 그는 다음날 교수를 찾아가 한국 전통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국악의 매력은 ‘흙내음’

성 교수는 국악만이 가진 독특한 음색을 ‘흙소리’라고 부른다. “처음 남도 시나위를 들었을 때 서양 음악보다 훨씬 자연에 가까운 소리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바이올린이나 피아노가 깔끔한 소리를 낸다면 해금과 거문고에선 조금 둔탁한 흙내음이 난다고 할까요.”

성 교수의 해금 연주 실력은 수준급으로 평가받는다. 국악한마당 등 연주 섭외도 자주 들어온다. “바이올린을 오랫동안 연주했기에 해금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손의 자세 등이 아주 달라 쉽진 않았죠.” 그는 한 학기당 2~3회 정도 연주회를 연다. 연주회라는 목표가 없으면 연습을 게을리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의 ‘전통예술나눔학교’ 프로그램에 나가 다문화 가정 아이들 앞에서도 연주했다. “누구나 국악에 관심 있다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서울대에 오기 전에는 미국 UC버클리와 인디애나대에서 일반인과 교사들을 상대로 한국음악을 가르쳤다. 인디애나대에서는 중국·일본음악 전공자들과 함께 동아시아학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문화 교육을 위해 한국음악을 배우러 온 미국 교사들이 대상이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부터 시작해 진도아리랑, 세마치 장단 등 국악의 기본을 가르쳤다.

유별난 진도 사랑

성 교수는 요즘 진도에 푹 빠져 있다. 시간만 나면 진도에 내려가 할머니들과 어울리며 상엿소리, 들노래 등의 전승 과정을 살핀다. 여름방학 때는 1주일씩 머물기도 한다. 올해만 진도를 여섯 번이나 다녀왔다.

“가끔은 학생들을 데리고 가는데 판소리를 배워 전라도 사투리를 잘 알아듣는 학생이면 편하죠.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들 말씀을 도통 이해할 수 없어요.” 그가 관심있게 지켜보는 곳은 지산면 소포리 일대다. 이곳의 한남례 할머니(81)는 1975년 ‘소포 어머니 노래방’을 만들어 지금까지 동네 주민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다.

성 교수는 진도 민속음악이 제대로 전승되지 못해 잊힐 위기에 놓였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의 ‘서울 중심주의’를 새삼 느꼈습니다. 인간문화재 어른들의 가족이 광주나 서울 등 대도시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어요. 외롭게 지내는 할머니들마저 돌아가시면 어떻게 될까요. 이분들이 민속음악의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한국행 고민할 때 남편이 “나도 가겠다”

[人사이드 人터뷰] "재즈의 고향서 들었던 '남도 시나위'가 국악 인생 이끌었죠"
성 교수는 2000년 재미동포인 남편과 결혼해 2남 1녀를 두고 있다. 얼핏 보면 다문화 가정 같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렇진 않단다. 성 교수와 남편 모두 미국 국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가구주가 될 수 없어 큰딸이 가구주를 맡고 있다.

2009년 서울대 교수 채용에 지원하면서 마음에 걸린 것도 자녀교육 문제였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을 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한국에서는 영어교육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영미권으로 간다고 들었는데 거꾸로 한국으로 오는 것이라 고민이 많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긴 아깝다’고 생각할 무렵 큰 힘이 돼준 것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나도 한국에서 일할 수 있으니 같이 가자’며 성 교수의 선택을 적극 지지했다.

아이들도 한국 대학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막내아들이 학교에서 다문화 관련 동영상을 보는데 엄마가 나왔다며 신기하다고 했어요. 자랑스러우면서도 약간 쑥스럽기도 한 모양이에요.” 그가 지난 8월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아이들 역할이 컸다. 방송사 등에서 출연 요청이 자주 들어오는데 바빠서 대부분 거절했지만, “그 프로그램엔 꼭 나가라”는 큰딸의 응원에 힘을 얻어 출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중학교 2학년인 큰딸은 요즘 한국 대중가요(K팝)에 빠져 있다고 한다. 성 교수는 한류 열풍으로 과거보다 미국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전 솔직히 대중가요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해외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과거에 비해 한국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고유의 굿이나 샤머니즘 등에 호기심을 갖는 외국인도 많아졌죠.”

성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국악의 세계화를 이룰 적기”라면서 앞으로 국악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을 보내 달라고 했다. 벽안의 외국인 국악과 교수의 간곡한 ‘당부’였다.

■ “한국학생들, 질문 잘 안해…요즘은 내가 먼저 묻는다”

서울대는 2009년 ‘국악 세계화’를 위해 성 교수를 첫 외국인 국악과 교수로 채용했다. 성 교수는 “영어로 된 출판물을 내줄 것을 기대한 것 같다”며 “한국 전통음악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해외에 많은데 정작 그동안 영어로 된 출판물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에서 세계음악 한국음악개론 음악인류학방법론 등을 영어로 강의하면서 12편의 국악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겪는 고충도 없지 않다. 항상 한국어를 써야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성 교수는 “한국어 실력이 늘긴 했지만 피곤하면 영어로 얘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음악교육협동과정의 전공주임교수도 맡아 행정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대부분 행정 용어들이 그에겐 생소한 한국어로 돼 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한국 학생들의 소극적인 수업 태도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다들 착하고 열심히 합니다. 특히 교수의 말을 잘 듣죠. 다만 수업 중에 질문이 거의 없어서 안타까워요. 미국에서는 학생이 교수의 강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언제든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거든요.”

한국에서 강의한 지 5년째가 되면서 질문이 없는 학생 대처법도 터득했다. 성 교수는 “요즘은 아예 내가 먼저 질문을 던진다”며 “만약 대답을 잘 못하면 이해하지 못한 걸로 여기고 다시 설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 힐러리 핀첨 성 교수

1971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 출생
1992 미들테네시주립대 졸업
2002 인디애나대 음악인류학 박사학위 취득, 샌프란시스코대·UC버클리·인디애나대 강의
2009 서울대 국악과 교수

글=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사진=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