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자 떠나 없는데도…그 사건현장엔 꼭 도착하라?
신속 정확한 112 출동을 위해 경찰이 도입한 ‘자동도착 시스템’이 빠른 현장 출동에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초 접수된 신고자 위치에 들러야만 출동한 실적으로 기록되는 탓에 신고자가 이동하거나 시스템이 위치를 잘못 지정하면 불필요한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찰관이 실적 기준에 맞추느라 촌각을 다투는 사건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범인을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서울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A경찰관도 최근 이 때문에 신고자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폭행을 당했다’는 신고에 즉각 출동했지만, 그 사이 신고자는 수백m 떨어진 곳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A경찰관은 신고자가 이동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최초 접수된 신고지점에 도착하는 임무를 ‘완수’한 뒤에야 신고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미 가해자는 도주한 뒤였다.

자동도착 시스템은 각 경찰서의 112 종합상황실에 신고 접수된 사건 현장 반경 50m 안으로 순찰차가 진입해야 임무가 완수돼 상부에 실적이 보고된다.

지난해 초 서울지역에 우선 도입된 뒤 자동도착 여부를 체크하는 한 가지 기능만 수정됐을 뿐 대대적인 개선작업이나 시스템 업데이트는 이뤄진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일선 경찰의 불만이 적지 않다. 자동도착 시스템은 최초 신고지를 기준으로 순찰차가 도착해야 할 지점을 정하는데, 폭행 등 각종 사건·사고는 출동하는 사이 신고자의 위치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선 경찰관은 자동도착률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에 ‘이미 신고자가 떠나간 자리’에 들러 출동 임무를 완수한 뒤 다시 신고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불완전한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기반으로 한 탓에 지정된 위치가 실제 현장보다 1㎞ 이상 떨어지기도 하고, 사건 현장이 좁은 골목이나 차량 접근이 제한된 지역이면 자동도착 임무를 수행하는 데 차질이 생기기도 한다. 한 경찰관은 “사건 현장을 눈앞에 두고도 실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허점’에도 불구하고 경찰청은 지난달부터 전국 경찰서와 파출소, 지구대에 이 시스템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현장 도착 여부 확인과 신속한 출동을 위해서는 이 시스템의 전국적 확대가 필요하다는 경찰 수뇌부의 판단이 작용했다.

그러자 일선 경찰관 사이에서는 “실적주의에 빠져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기존의 수동 시스템이나 무전보고 시스템은 허위 도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어 자동도착 시스템 사용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다만 일선의 불만을 고려해 여러 개선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도착 여부를 확인하는 기준을 최초 신고지 반경 50m에서 200m로 늘리거나, 스마트폰을 활용한 모바일 도착시스템을 도입하는 등의 개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