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회피하고,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되려 하지 않는다. 이런 피터팬 증후군이 우려할 만한 지경이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지난 주말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연구분석을 보면 이게 우리 산업의 구조적인 취약점이 되면서 경제 활로를 저해하고 있다.

우선 30대 그룹에 신규 진입이 없어졌다. 1997~2003년 매년 2~4개씩이었으나 2004~2010년 1개로 줄더니 그 이후에는 아예 없다. 2008~2012년 중견기업 2505개 중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도 한국타이어, 현대오일뱅크 두 곳뿐이다. 상장률도 최악이 됐다. 2010년에는 대상 기업 664개 중 22곳이 상장했지만 지난해엔 811개 중 4곳만 상장했다. 자산 2조원 이상으로 보면 2012년 이후 요건을 충족한 곳이 60~65개였지만 실제 상장기업은 전무했다. 이렇다 보니 산업의 편중 역시 걱정스런 정도라는 게 전경련의 진단이다. 예컨대 포천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제조업과 서비스업 비율은 5 대 5인데 여기에 포함된 한국기업은 7 대 3이다. 서비스 쪽에선 글로벌 대기업이 더 이상 못 나오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다. 기업을 키울 이유도, 인센티브도 없다. 커질수록 규제만 늘어난다. 전경련에 따르면 27개 법률이 기업 크기에 따라 자본구성, 영업활동 등 49종류의 규제를 하고 있다. 자산 1000억원 기업은 5종의 규제를 받지만 5000억원이 되면 규제는 11개로 급증한다. 2조원, 5조원으로 자산이 커지면 21개, 44개로 더 늘어난다. 10조원짜리로 성장하면 49개 모두를 적용받는다. 큰 돌일수록 정을 더 맞는데 누가 기업을 키우려 하겠나. 만연한 피터팬 증후군은 결국 거미줄 규제 때문이다.

기업이 성장을 포기하면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 지난해 대기업 매출은 0.3% 증가에 그쳤다. 한은이 이런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최악이다. 재정투입을 극대화하고, 금리를 최저로 낮추며, 권리금을 억지로 보호한다고 경제가 살아날까. 국회와 정부가 어떤 식으로 규제를 양산하는지도, 리스트도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