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CEO 완다그룹 왕젠린 회장, 군인출신 CEO 딱딱하겠네?…직원 복지·자선 활발한 '따남'
중국에서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려면 화려한 배경이 필수적이다. 사회주의 정권이 토지를 국유화했기 때문에 토지사용권을 빌리는 것이 개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방 정부가 내놓은 땅의 사용권을 입찰을 통해 낙찰받은 뒤 건물을 짓는 식이다.

부동산 개발업체 ‘바오리(保利)’가 대표적이다. 덩샤오핑의 셋째 사위인 허핑(賀平)이 명예회장이고, 덩샤오핑의 최측근이었던 류화칭(劉華淸) 제독의 사위 쉬녠샤(徐念沙)가 회장이다. 하지만 이런 중국에서도 대단한 배경 없이 성공한 ‘부동산 신화’가 있다. 현재 완커, 헝다그룹과 함께 중국 3대 부동산 기업으로 꼽히는 다롄완다(大連萬達)그룹을 이끄는 왕젠린(王健林) 회장이다. 그는 중국 재계정보 조사기관 후룬연구원이 올해 발표한 ‘중국 부호 순위’에서 1450억위안(약 25조1000억원)의 재산을 기록해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후룬연구원은 “왕젠린 회장이 조만간 1위를 탈환할 것”이라며 “왕 회장의 사업이 중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도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군인에서 中 부동산 황제로

왕젠린 회장은 1954년 쓰촨성(四川省)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홍군 장정과 항일전쟁에 참전했던 군인 출신으로 쓰촨성 임업청에서 근무했다. 젠린이란 이름도 아버지가 ‘숲을 만든다’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왕젠린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인민해방군의 내전 활약상을 그린 영화 ‘임해설원(林海雪原)’을 보고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1970년 12월 선양(瀋陽)군구에 입대해 15년6개월 동안 군생활을 했다.

1986년 중국 정부가 군병력 감원을 실시함에 따라 그는 군복을 벗고 다롄시(大連市) 시강구(西崗區) 인민정부 판공실 주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시강구 정부는 149억위안(약 2조6000억원)의 부채를 떠안고 있는 주택개발공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주택 개발에는 문외한이었지만 왕젠린은 당시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주택개발공사로 전직을 자원했다. 부동산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시강구 주택개발공사는 노후화된 주택을 개조하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왕젠린은 1970년대 후반 이후 본격화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중국인들의 소득을 늘려 고급 주택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전통적 형태의 건물이 아닌 서양식 욕실과 창문을 도입해 주택을 좀 더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형태로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왕젠린의 주장을 바탕으로 지은 건물은 평당 1580위안으로 당시 시강구 주택(평당 1100위안)보다 비쌌지만 불티나게 팔렸다.

시강구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왕젠린은 부동산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주택개발공사의 이름을 완다로 바꾼 뒤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고, 이후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의 경영을 바탕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아파트 등 주택개발 및 임대에만 치중하던 다른 업체들과 달리 왕젠린은 상업용 빌딩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는 백화점·쇼핑몰·호텔·오피스텔·고급 아파트 등이 한 곳에 몰려 있는 ‘대규모 복합 쇼핑몰’이라는 개념을 중국에 처음 도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편리성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가 세운 복합 쇼핑몰인 ‘완다광창(萬達廣場)’으로 몰려 왔다. 완다 광창은 현재 중국 내 85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완다그룹은 이 외에도 75개의 백화점과 51개의 5성급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로 기업 가치 극대화

왕 회장은 주업종인 부동산 외에도 유통, 여행, 엔터테인먼트 분야 등으로 사업을 넓혀가고 있다. 급변하는 사업 환경 속에서 부동산에만 쏠린 사업구조는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2012년에 26억달러(약 2조6500억원)를 들여 미국의 대형 영화관 체인 AMC를 인수했다. 왕 회장은 AMC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이에 따라 2011년 2억4000만달러(약 258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던 AMC는 완다가 인수한 지 1년도 안 돼 흑자로 돌아섰다.

AMC를 기반으로 지난해 9월에는 산둥성 칭다오(靑島)에 500억위안(약 8조원)을 투입해 ‘둥팡잉두(東方影都·영화수도)’ 건설에도 착수했다. 2015년까지 미국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중국판 ‘찰리우드’를 세운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9월 착공식에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니콜 키드만, 존 트라볼타, 캐서린 제타존스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또 최근에는 윈난성 시솽반나와 헤이룽장성 하얼빈 등에 테마파크 건설도 진두지휘하고 있다. 왕 회장은 “2005년 영화산업에 진출하고 극장을 운영하기로 했을 때만 해도 주주의 99%가 반대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성공했다”며 “2020년까지 세계 영화산업의 20%를 차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완다는 지난해 영국 고급 요트 제조업체인 선시커를 3억파운드에 인수하고 한국 이랜드그룹의 레저산업에 투자를 결정하는 등 글로벌 레저기업으로의 변신 역시 꾀하고 있다. 사업 다각화의 결과 2011년 중국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에 빠졌을 때도 그의 자산은 오히려 50%가량 급증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 속에서 최후에 살아남는 곳은 완다가 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이 현실이 된 것이다.

타인 배려가 기업 활동의 근본

왕 회장은 사업만큼이나 자선활동으로 유명하다. “생명이 멈추지 않는 한 자선도 멈출 수 없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 그는 2008년 쓰촨 대지진 당시 가장 먼저 성금을 기부했으며, 지금까지 낸 지진 관련 기부금만 3억5000만위안(약 615억원)에 달한다. 2010년에는 지진 재해 지역에 2억위안(약 360억원)을 들여 학교를 건립하기로 하는 등 지난 25년 동안 사회에 기부한 자선기금은 31억위안(약 5400억원)이 넘는다. 활발한 자선 활동에 힘입어 완다그룹은 중국 기업 중 유일하게 ‘중화자선상’을 7회나 수상했다.

왕 회장은 직원 복지에도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이인위본(以人爲本)’의 신념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현재 다롄완다의 연봉은 중국 내 기업이 아닌 세계 500대 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리고 중국 기업 최초로 유급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실적이 뛰어난 직원에게는 본인과 가족들의 휴가 비행기 티켓 비용에 숙박비까지 지급한다. 중국 기업 가운데 파격적인 대우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