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명무실 문화접대비
“문화접대비요? 그런 게 있었나요.”

직원 수 500여명인 한 중소기업 이사에게 “문화접대비 지출 규모가 어느 정도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되물었다. 상장사인 또 다른 중소기업 직원도 “문화접대비가 있는지 지금 처음 알았다”고 했다. 7일 국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문화접대비 지출 현황을 취재하며 가장 많이 들은 대답이다.

문화접대비 제도는 기업의 접대문화를 건강하게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2007년 9월 도입했다. 거래처에 연극·뮤지컬·전시회·운동경기 등 관람권으로 접대하면 세제혜택을 주는 게 요지다. 문화접대비가 총 접대비의 1%를 넘는 경우 접대비 한도의 10%를 비용으로 추가 인정해준다.

취지야 좋다. 잘만 하면 술자리 위주의음성적 접대 문화를 바꾸고, 동시에 문화예술 시장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8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날 발표한 국정감사 보도자료를 보면 “기업의 접대비 지출 신고금액은 지난해 9조68억원으로 2009년 대비 20.4% 늘었지만 문화접대비 지출 신고 금액은 45억원으로 몇 년째 제자리 수준”이다. 도 의원은 “최근 5년간 접대비 지출내역 확인 결과 체육진흥공단, 국제방송교류재단, 예술의전당 등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조차 문화접대비가 0원이었다”고 꼬집었다.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많다. 국내 공공기관의 한 회계 담당자는 “앞에 문화를 붙였어도 접대비는 접대비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며 “어떻게 해서든 접대비를 최소화해야 하는데 세금 몇백만원을 줄이기 위해 문화접대비를 늘릴 수는 없다”고 털어놨다. 또 “선물용으로 주려면 값비싼 관람권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야 기업 입장에선 다른 대안을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정작 답답한 쪽은 문화예술계다. 차라리 문화접대비를 접대비 항목에서 빼내 일반경비로 처리해주는 것은 어떨까. 문화융성을 위해선 좀 더 치밀하고 섬세하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김인선 문화스포츠부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