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모임인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PS)’는 1947년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창립할 당시부터 최고 석학과 유력 인사를 회원으로 엄선했다. 그런 만큼 학회 차원이 아니라 개인 차원에서도 세계적으로 또 각국에서 많은 공헌을 해왔다.

MPS 회원 중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만 하이에크를 비롯 여덟 명이나 나왔다. 하이에크가 1974년, 밀턴 프리드먼이 1976년에 받았다. 1980년대엔 조지 스티글러(1982년), 제임스 뷰캐넌(1986년), 모리스 알레(1988년)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로널드 코즈와 게리 베커가 1991년, 1992년 각각 연이어 수상했고 2002년에는 버논 스미스가 전통을 이었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경제학계의 태산북두이지만 특히 MPS와 관련해서는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공헌이 가장 빛난다. 하이에크(1899~1992)는 75세에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960년대 초부터 병약해진 그였지만 수상 이후 활기를 되찾았다. 3부작 ‘법, 입법과 자유’를 완성했고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때는 정부 지출 축소, 감세와 탈규제, 노동조합의 독점력 억제 등의 해법으로 선진국 정책 당국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했다. 이를 가장 잘 받아들인 것이 영국(대처리즘)과 미국(레이거노믹스)이었다. 그는 1988년 마지막 저서 ‘치명적 자만: 사회주의적 지적 오류’를 펴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1년 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프리드먼(1912~2006)은 1947년 MPS 창립총회에 참석하면서 첫 해외여행을 했다. 이후 케인스와 함께 21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로 활동했다. 시카고학파의 리더로 통화주의적 경제정책을 이끌어 ‘프리드먼 혁명’을 전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30년대 대공황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서투른 통화정책 때문에 발생했다고 진단했고, 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실패했으므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