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보다 더…"司試 존치" 외치는 고시촌 주민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대학동 ‘신림동 고시촌’. 부슬비가 내린 거리에는 25일 열리는 ‘사법시험 존치 범국민집회’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펄럭였다. 한 현수막엔 ‘고시촌의 희망, 마지막 기회다. 죽느냐! 사느냐! 사시존치!’라고 쓰여 있었다. 집회 장소까지 무료 전세버스를 제공한다는 문구도 보였다.

사법시험존치국민연대가 25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다. 국민연대에는 고시촌 주민들로 구성된 관악발전협의회, 대한변호사협회, 서울지방변호사회, 대한법학교수회 등이 포함돼 있다.

이번 집회에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원룸과 고시원 등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고시촌에서만 45인승 전세버스 20대가 출발한다”고 주최 측은 전했다. 지난 17일에는 고시원협회, 원룸협회 등의 임원들이 인원 동원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주최 측이 내세운 사법시험 존치의 명분은 ‘공정한 경쟁’이다. 양재규 국민연대 공동대표(대한변협 부회장)는 “공정한 경쟁의 대명사인 사법시험을 계속 실시해야 한다”며 “집회에서 로스쿨 출신의 불공정한 취업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석근 관악발전협의회 명예회장은 “사시존치 운동을 단순히 지역 현안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며 “현대판 음서제를 막기 위한 구국운동”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명분에도 이번 집회 참석 예정 인원 1000여명 중 800명 이상이 고시촌 주민들인 만큼 사법시험 폐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항의성 집회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사법시험 선발 인원이 줄면서 고시촌의 원룸과 고시원 공실률이 높아지고 상권이 쇠퇴하는 ‘공동화(空洞化)’ 현상 심화가 이 같은 집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법시험 존치는 고시촌 주민들에겐 신림선 경전철, 서울대 시흥캠퍼스 조성 등과 같은 중요한 지역 현안이다.

로스쿨이 없는 대학의 법대 교수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법시험이 2017년 완전 폐지되면 로스쿨이 독점적으로 변호사 양성을 맡게 돼 기존 법과대학은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환 대한법학교수회 사무총장은 “로스쿨 외에도 법조인을 양성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시생 정모씨(30)는 “사법시험 존치를 요구하는 운동에 당사자인 학생은 없고 이해관계자들만 있다”며 “저마다 명분을 내세우지만 최근 주요 대학 인근 원룸 주인들이 기숙사 신축 반대 운동에 나선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형주/배석준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