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세계경기 급랭…'4차 양적완화'와 제2유동성 장세
세계경기가 갑작스럽게 급랭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금융위기 이후 어렵게 마련된 ‘그린 슈트(green shoot·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의 푸른 싹)’가 ‘골든 골(golden goal·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의 풍성한 과일)’이 되기도 전에 ‘옐로 위즈(yellow weeds·위기 재연과 경기 재침체의 시든 잡초)’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 앞날에 대한 ‘대침체론(great recession)’이 급부상해 혼란스럽다. 최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경제 콘퍼런스에서 스탠리 피셔 미국 중앙은행(Fed) 부의장이 이 가능성을 제기했다. 작년 11월 이후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미국 경제 장기 침체론을 잇달아 경고해 왔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세계경기 급랭…'4차 양적완화'와 제2유동성 장세
가장 큰 이유는 노동시장 참가율이 사상 최저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지고 있는 점을 들고 있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제자리다. 금융위기 이후 노동과 자본의 생산성이 제고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의 투여도까지 작다면 성장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피셔 부의장은 3% 내외로 알려진 잠재성장률이 이미 1%포인트 정도 낮아졌다고 추정했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의 스승으로 실질적으로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피셔 부의장의 이런 시각은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문제다. 최소한 2분기 성장률 발표 이후 거세게 불고 있는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은 물건너 갔다는 분위기다. 오히려 4차 양적완화(QE)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달 21일부터 2박 3일간 열리는 ‘2014 잭슨홀 미팅’이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초에는 조기 금리인상론에 힘을 싣기 위해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는 배제한 채 금리인상에 전향적인 매파들만 대거 초청했다. 이 상황에서 느닷없이 대침체론이 제시돼 정책금리를 비롯한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어떤 조합을 만들어낼지 자못 궁금하다.

일본 경제는 더 문제다. 올해 4월1일 단행한 소비세 인상 충격이 반영되는 첫 분기인 2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연율 -6.8%까지 떨어졌다. 당초 예상선인 -4%대의 무려 1.5배에 이르는 낮은 수준이다. 벌써부터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잃어버린 30년’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야당 주도로 아베 신조 총리의 ‘조기 하야론’이 불거질 정도다.

추가 부양책은 불가피하다. 일본은행은 윤전기를 다시 쌩쌩 돌릴 태세다. 아베 정부도 오바마 정부가 추진했던 ‘페이고(pay-go·부양효과가 적은 일반 경직성 항목을 줄여 마련한 재원으로 부양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으로 밀어주는 제도)’와 화합 차원에서 과거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던 ‘간시안(Kansian·균형재정승수=1에 착안해 조세와 지출을 동일 규모로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제도) 정책’ 도입을 전제로 검토에 들어갔다.

유럽 경제는 더더욱 문제다. 유럽의 상징이자 최후의 보루인 독일 경제마저 2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했다. 포르투갈 최대 은행인 방쿠이스피리투산투(BES)도 기술적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서방과 러시아 간 경제갈등 속에 동유럽 경제도 심상치 않다. 유럽 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6월에 열린 정책회의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그동안 검토해온 시중은행 예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제’를 전격 도입했다. 이르면 다음달 열릴 회의에서 유럽판 양적완화 정책인 ‘목표를 겨냥한 장기대출프로그램(TLTRO)’을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 경제도 2년 만에 정책금리 인하를 검토할 만큼 소비와 투자지표가 안좋게 나오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2년 7월 예금금리를 연 3%로 0.25%포인트, 대출금리를 연 6.0%로 0.31%포인트 내린 이후 경기 둔화세가 뚜렷한데도 금리를 동결해 왔다. 부동산 거품이 심한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내렸다. 무려 15개월 만에 어렵게 단행한 조치다. 워낙 뒤늦은 데다 예상폭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에 증시 반응은 미온적이다. 오히려 정책금리 인하를 예상해 미리 내렸던 시장금리는 반등하고 있다. 추가 금리인하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빨리 이동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 경기가 급랭할 조짐을 보이자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통화정책 기조를 발빠르게 완화할 움직임이다. 월가에서는 ‘제2의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증시는 돈의 힘에 의해 지탱되더라도 세계 경제 성장률은 갈수록 하향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지 한 번쯤 새겨봐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