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삼성전자 '전교 1등 딜레마'…성장 한계돌파 '해법' 어디서 찾을까
[ 김민성 기자 ] △ 기자 = "삼성이 그렇게 안 좋은가요?"
▲ A 임원 = "네. 위기이긴 위기예요. "

△ 기자 = "늘 그랬듯 돌파구는 있을 것 아닙니까. 실적 부담 때문인가요."
▲ A 임원 = "예전같은 뾰족한 돌파구는 안 보여요. 다음 분기 실적 좋아질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개선될만한 지표들이 크게 없어요. 정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대화는 짧고 묵직했다.

삼성그룹 한 임원은 "삼성이 위기냐" 는 질문에 대해 "위기"라고 인정했다.

되돌아보면 삼성은 늘 위기였다. 삼성을 보는 외부 시선은 항상 싸늘했다.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은막의 스타가 쓸쓸히 잊혀지듯 삼성의 글로벌 1등도 추억이 될거라고 말이다.

삼성전자가 36조 원 대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둔 지난해 이후 일반인들의 기대치가 더 높아졌다. 시장의 눈높이는 '과거' 아닌 '미래'로 달려가 '더 잘해야 한다. 더 벌어야 한다'고 버티고 서 있다.

기대가 커 실망도 컸을까. 7조 원 대 영업이익 어닝 쇼크(실적 쇼크)를 던진 올 2분기라면 더 삼성의 '위기'와 '추억'을 거론하는 건 예고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좀 다르다. 삼성의 내부에서도 위기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A임원만이 아니다. '실적 개선'과 '신수종 사업', '변화와 혁신', '체질 개선', '한계 돌파' 등 진취적이고 희망적으로 향후 시장을 전망하던 예전과 분명히 분위기가 다르다.

◆ 팽배한 위기 의식 …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기자수첩] 삼성전자 '전교 1등 딜레마'…성장 한계돌파 '해법' 어디서 찾을까
이제 위기감은 삼성 안팎에서 팽배해졌다. 이를 고스란히 드러낸 것은 지난 2분기 삼성전자의 확정 실적 발표 때였다.

매출 52조3500억 원, 영업이익 7조1900억 원. 영업이익의 60~75%를 차지해왔던 무선 사업 부문인 정보기술·모바일(IM) 부문 영업이익이 4조4200억 원에 그쳤다. 마지막으로 4조 원대 영업익을 냈던 2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IM부문은 2012년 3분기부터 5조 원 대 영업이익에 올라선 뒤 올 1분기까지 6조 원대 실적을 내온 그룹 내 최대 효자 사업이다.

IM 부문 실적 악화는 예견됐다. 지난해 말부터 고가 스마트폰 시장 침체 우려로 삼성전자는 몸살을 앓았다. 다만 1분기엔 실적 악화 우려 속에서도 IM부문이 6조4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 스마트폰 성장 둔화 우려를 씻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올 1분기와 2분기 차이점은 향후 전망에 대한 삼성의 관점이다. 1분기 확정실적을 발표한 지난 4월29일 삼성전자는 향후 IM 전망에 대해 "갤럭시 S5의 글로벌 판매를 확대하고 하반기에는 플래그십 모델을 확충, 시장 성장을 상회하는 실적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지만 실적을 견조하게 유지하겠다는 게 긍정적 메시지였다.

2분기 실적 발표 때는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무선 사업은 경쟁 심화에 따라 3분기 실적 개선이 쉽지 않다"고 회사 측은 털어놨다. IM 부문 뿐만이 아니다. 전자업계 전통적 텃밭인 CE를 포함해 디스플레이, 반도체 사업 영역인 시스템 LSI까지 둔화 전망 일색이었다.

양대 '캐시카우'인 IM과 반도체의 영업이익이 뒷걸음질친 것도 모자라 3분기 실적 개선 전망이 총제적으로 어둡다고 했다. 증권시장 등 제 3자가 아닌 삼성전자 공식 전망이란 점에서 시장 충격은 더 컸다.

자기 고백과도 같았다.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는 게 업계 반응이었다. 삼성전자의 기침에 자칫 한국 경제가 몸살을 앓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장 전망치를 어둡게 내고 싶어하는 기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며 답답해 했다. 긍정적 전망으로 시장 기대를 높인 뒤 실적 발표 때는 정작 시장에 어닝 쇼크를 던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 신년구호 '한계 돌파' 무색 … 구조조정설 몸살
지난 1월 2일 2014년 삼성그룹 신년하례식 행사가 열렸던 호텔신라 정문에 걸린 대형 그림판. 사진=김민성 기자
지난 1월 2일 2014년 삼성그룹 신년하례식 행사가 열렸던 호텔신라 정문에 걸린 대형 그림판. 사진=김민성 기자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는 삼성그룹 전체에 적잖은 파장을 남겼다. 지난해 그룹 전체 순이익 24조2000억 원 중 74%인 18조 원을 책임졌던 삼성전자였다. 건설, 금융, 중화학 등 그룹 계열사 실적이 부진해도 이를 메우던 삼성전자마저 동력이 꺼져가는 탓이다. 삼성전자에 부품을 공급하는 삼성SDI, 삼성전기, 디스플레이 부문 등 전자 계열도 실적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비상경영 카드를 빼들었다. 먼저 마른 수건 물부터 짜내고 있다. '시스템의 삼성'이란 특유의 경영관리로 비용을 수시로 절감해온 삼성이지만 구조조정 강도를 더 높였다. 출장비와 불필요한 야근·잔업을 줄이고, 연·월차 소진을 권장해 불필요한 경비를 없앴다.

신규 투자계획 사업성을 재검토하는 등 보수적인 접근도 검토하고 있다. 업무 지원 성격의 경영지원실 소속 인력을 사업 부문 일선에 배치하는 등 조직 재편 작업도 서두르고 있다. 현장 중심 경영을 통해 상품 개발 및 영업에 더 방점을 두는 전략이다.

자연스레 구조조정 이슈도 부각됐다. 그룹 핵심 사업군인 전자 계열사가 부진 도미노 타격을 입기 전에 발빠르게 실적을 만회할 조직 재편과 인력 재배치 등 구조조정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논리다.

최근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나서 삼성전기에 대한 감사(경영진단)를 벌이자 관련 업계에선 구조조정의 시발점으로 보는 해석도 나왔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 등 부품을 공급해 왔지만 최대 납품처인 삼성전자가 부진하자 2분기 연쇄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도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스마트폰 및 TV, 노트북 등에 쓰이는 디스플레이 패널을 생산하기 때문에 삼성전기만큼 삼성전자 내 다른 사업부 매출 의존도가 높은 탓이다. 삼성SDI는 LCD 등에 밀려 퇴조한 PDP 사업을 접기로 했다. 장기 근속직원에 대한 희망퇴직도 실시 중이다.

삼성그룹은 구조조정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상황 및 전략에 따라 상시적인 인력 재편은 할 수 있지만 인위적 감원은 없다는 것. 삼성전자 역시 실적 부진에 따른 내부 인위적인 감원 등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분기 실적이 부진했다해도 7조 원 대, 여전히 막대한 영업익을 낸 만큼 명예퇴직 희망퇴직 등을 할 명분이 없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명예퇴직이나 희망퇴직 등을 결국 시행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이 대대적 구조조정설에 몸살을 앓는 이유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삼성의 경영 기조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실적주의를 바탕으로 잘하면 상을 주지만, 못하면 바로 벌을 주는 것. 조직에 끊임없는 긴장감을 불어넣는 게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힘이고, 원칙이었다.

◆ 이건희 회장 부재 100일 … 돌파구는 어디에
2014 신년하례식 참석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경DB>
2014 신년하례식 참석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경DB>
시장 관심은 위기극복 방안이다. 구조조정이나 인력 재편, 비용 절감 등 눈에 보이는 단기책이 아닌 삼성그룹이 장기적으로 어떤 대안과 돌파구를 준비 중이냐는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의 올해 신년, 경영기조로 '한계 돌파'를 천명했다. '1등 삼성'이 시장 불확실을 뚫고 한 단계 더 발전하는 방책은 오직 '자신이라는 한계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 밖에 없다는 메시지였다. 삼성의 대내외 경영 여견이 악화할 것을 이미 예견한 셈이었다. 21년 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던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과도 같은 변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삼성그룹은 최근 위기 극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고재무책임자(CFO) 주관 워크숍 및 전략설명회 등을 잇달아 열며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해법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바이오 제약·의료기기·신소재·전기차·태양전지 등 미래 먹거리 사업 청사진은 2010년 공개됐다. 하지만 기존 전통 사업 영역 성과에 비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포스트 이건희'로 불리는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시장 이목이 집중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아버지인 이 회장의 급성 심근경색 치료가 장기화하는 상황이다. 이 부회장이 언제 공식적 후계자로 추대될지, 그가 삼성 안팎에 높아진 위기와 불확실성을 해소해 줄 수 있을지, 그 해법과 대안은 무엇인지 등 물음표는 산더미다.

이 부회장은 최근 애플과의 미국 외 지역 특허소송을 철회하는 합의를 이끌어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삼성전자가 특허 사용권 계약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이 부회장이 빌 게이츠 창업주와 다진 친분으로 마무리 지을 거란 기대가 높다.

이 부회장의 장점은 특유의 차분하고 친화적인 리더십이다. 특히 '삼성=글로벌 기업'이란 위상에서 총체적 리스크를 점검하는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있다. 최근 전세계 삼성 임직원 700여 명이 참석한 '글로벌 전략협의회'를 직접 참관한 이유이기도 했다.

삼성전자를 보면 전교 1등 학생의 딜레마가 떠오른다. 전교 1등, 하기도 어렵지만 지키는 건 더 어렵다. 이번 삼성전자의 위기는 1등을 지켜온 방법의 위기이기도 하다. 전교 1등 학생이 공부를 게을리했다기 보다는 시험 난이도가 높아진 느낌이랄까. 기존 암기 위주 공부에서 창의력과 자유로운 사고를 요구하는 추세로 시험 문제 출제 방식이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기업이며, 삼성전자가 맞닥뜨린 벽도 글로벌 경쟁이다. 경쟁자 역시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의 글로벌 강대 기업들이다. 삼성 안팎을 뒤흔든 '위기 돌파' 해법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경닷컴 김민성 기자 mean@hankyung.com @mean_R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