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관 권한축소 등 제안 봇물…군사법원 폐지 주장도 나와

숨진 윤모 일병 사건을 계기로 군 사법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론이 떠오르고 있다.

병영 폭력이 방치된 원인 중 하나로 지휘관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군 사법체계가 지적되면서 군사법원 폐지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이미 10년 전 이뤄졌다가 현실화하지 못한 점으로 미뤄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 군사법원의 특수성 = 지난 2002년 육군 모 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군 판사가 아닌 현직 중령이 재판부 합의 결과를 무시하고 무죄를 선고한 일이 벌어졌다.

사격훈련 중 병사에게 난청 증세를 유발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상)로 기소된 대위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키로 합의했으나 사단 인사참모로 재판부에 참여한 중령이 선고공판에서 돌연 결론을 바꾼 것이다.

고등군사법원이 벌금형으로 1심 판결을 뒤집긴 했지만, 이 해프닝은 군사법원의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로 기록됐다.

민간법원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애당초 군사법원의 설립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군사법원은 전투력을 보존·발휘하기 위해 존재하고, 따라서 지휘관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군 판사가 아닌 장교가 심판관으로 재판에 관여하고 지휘관이 관할관으로 감경권을 행사하는 특수한 제도 역시 군기를 유지하고 지휘관 명령을 조직 속에 침투시키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설상가상 군 검찰의 수사 기능이 제한적이고 군 판사마저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군사법원 판결은 상고심에서 자주 깨진다.

고등군사법원 판결 중 대법원에서 파기되는 비율은 평균 5%대로, 2∼3% 수준인 민간 고등법원 판결에 비해 파기율이 현저히 높다.

◇ 특수성에 대한 반론 = 군사법원이 법 집행을 제대로 했다면 윤 일병 사건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군 사법체계 개편론의 출발점이다.

처음부터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가해자들에게 합당한 공소사실을 적용하지 못한 군 검찰도 함께 비판받고 있다.

군 인권단체 등은 사실상 형벌권까지 행사하는 지휘관의 권한을 축소하고 1심부터 법률 전문가로만 재판부를 구성해 사건 심리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군 형법 위반 사건만 심리하도록 하는 재판권 축소, 국방부 소속 군 판사단에 의한 순회 재판 실시, 일반 병사의 사법 참여, 군 검찰 제도 개혁 등을 구체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최근에는 군사법원을 아예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전시가 아닌 평시에는 민간법원에 사건을 맡기자는 취지다.

군사법원에서 국선변호인을 맡은 박지웅 변호사는 "군대의 특수성이라는 미명으로 군사법원을 그냥 놔두기에는 부작용이 너무 많다"며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군사법원 개편론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앞서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는 이미 2004년에 군사법원 폐지안을 포함한 제도 개선 논의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한 바 있다.

하지만 군사법원법을 제한적으로 수정하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 군 법무관 출신 한 부장검사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려는 내부 논리가 워낙 공고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