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다수결은 종종 정통성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권은희 후보의 당선에 곱지 않은 시선이 많은 것도 그래서다. 다양한 대안들이 있지만 결선투표제 같은 것은 프랑스 국민들을 자주 실망시켜왔다. 표결은 사안이 중요할수록 중(重)다수결 제도를 선택한다. 헌법 재판은 3분의 2요, 주총 특별결의는 출석 3분의 2, 총주식의 3분의 1이 의결 조건이다. 지금 국회를 불임(不姙)으로 만든 것은 5분의 3을 요구한 국회선진화법이다. 서울의 재개발 재건축을 막고 있는 것도 의결권 강화 때문이다. 소수의 힘이 강화될수록 마지막 한 표는 알박기와 비슷해진다.

다수성이 높을수록 민주성도 높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인민공화국의 만장일치제를 수용해야 한다. 만장일치는 마지막 한 사람에게 근접할수록 표값이 올라간다. 그래서 그 한 표에 대한 매수, 협박이 자행된다. 아니면 수용소가 필요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반대가 나올 만한 중대 사안은 아예 표결에 올리지 않는다. 대체기구인 강력한 사무국(정치국)을 두고 독재자가 서기장을 맡는다. 옛 소련이 그랬고 중국과 북한은 지금도 그렇다. 공개투표 혹은 표결의 공개는 그렇게 대중의 인민주의적 압력을 높인다.

금융통화위원회 의사결정은 7인중 5인 이상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일종의 중다수결이다. 금통위원은 직역 대표의 성격을 갖는다. 게다가 임기직이기 때문에 전문가 집단인 집행부에 포섭 혹은 포획되기 쉽다. 더구나 김중수 전 한국은행 총재의 주지(主知)주의는 금통위원들을 적잖이 압박했을 것이다. 금통위가 대부분 억지스런 만장일치에 도달하는 것은 이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구든 반자유주의적 압력에 노출돼 있으면 필시 타인 동조적 행태를 보인다. 무정견일 경우에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은 집행부는 ‘결과적으로’ 정치국과 비슷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금통위 의사록을 읽어보면 숨이 막힌다. 그들은 현실 경제의 세밀한 모든 부문들에 대해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정답이 있을지 의문이다. 물가·고용·환율·설비투자·소비·노령화까지 수많은 항목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고, 반대증거를 요구하고, 효과와 부작용을 집요하게 추궁한 끝에 대부분의 금통위는 “결론 없음, 따라서 금리는 이번에도 동결”이라는 허무한 만장일치에 도달한다.

지난 7월엔 정해방 위원이 14개월 만에 처음으로 반대표를 던졌다고 한다. 경기가 급등락하는 14개월 동안이나 금리를 동결했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미정이 결정’인 그런 비정상이요, 마치 불가능성의 정리라도 작동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토론과 표결에 종종 엇박자가 난다는 점이다. 7월 의사록을 보면 “한은 집행부가 성장과 물가에 대해 상향 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금통위원들의 공세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막상 결과는 또 동결이었다. 정해방 위원의 반대 1표가 있었지만 그전 13개월 동안은 모두 만장일치였다. 이래도 동결, 저래도 만장일치다.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만장일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적완화 지속 반대, 채권매입 반대를 주장하는 위대한 반대자들이 있다. 거품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며 1년 이상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반대했던 제프리 래커를 비롯 토머스 회니그, 리처드 피셔, 찰스 플로서, 에스더 조지 등은 위대한 매파들이다. 물론 이들의 이름도 바로 공개된다.

무언가를 더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심리상태는 소수의견을 주장하려는 사람들의 반대 표결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정치 여론조사에서는 이를 숨은 표라고 부른다. 금통위원은 고도의 경제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간주된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다. 그래서 토론은 너무 깊어지고 실수는 극도로 경계된다. 과도하게 신중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과도한 토론 취향은 종종 변명거리를 축적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금통위의 변화를 주문해본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