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자에게 ‘재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보험가입자의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법원은 비슷한 사례에서 재해보험금을 다 주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많이 내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3일 법조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약관대로 자살을 ‘재해’로 인정해 일반사망보험금보다 2~5배 많은 재해사망보험금을 줄 것을 요구하는 취지의 소송은 지금까지 4건이 파악됐다.

재판부는 이 중 3건에 대해 일반사망보험금이나 정해진 재해사망보험금의 일부(최대 50%)만 지급하면 된다고 결정했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으로 인해 우연하고 급격하게 발생’하는 것이라는 재해의 특성을 자살이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재해로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다.

재해사망금을 지급하라고 한 1건의 판결은 2007년에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자살한 교통재해보장보험 피보험자의 유족들에게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최근 금융당국이 ING생명이 자살자에게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한 것을 위법으로 판단한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3건의 유사 소송은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았다. 2009년 한화생명과 보험가입자 간 소송에서는 일반사망보험금만 지급하면 된다고 판결했다. 또 2013년 동양생명 보험가입자가 제기한 2건의 소송은 약관에서 정한 재해사망보험금의 40%와 50%만 지급하라는 내용의 조정을 성사시켰다.

한국보험학회장을 지낸 양승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약관이 불투명해 혼선이 생겼지만 자살이 재해가 아닌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는 게 사법부의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