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지(battery)의 발전과 내연기관의 쇠퇴

구글이 무인자동차 제작을 결정하고 전세계 지리와 도로를 정보화해서 전략적 이점으로 삼은 것은 미래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할 만한 추세들 가운데 작은 하나는 전지의 발전이다. 전지가 발전하면, 작은 수송 기계들이 내연기관 대신 전지에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내연기관이 발명되면서, 수송 수단은 거의 다 내연기관에서 추진력을 얻었다. 내연기관은 아주 효율적이어서, 자동차의 경이적 보급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도 전지가 발전하면, 내연기관은 실질적으로 사라지리라는 예측이 이미 반 세기 전부터 나왔다. 차에 연료를 싣고 다니는 것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전지의 발전은 예상보다 훨씬 느렸고, 덕분에 아직도 내연기관은 번창한다. 그러나 근년에 성능이 좋은 전지가 나오면서, 사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계의 환로(loop)에서 사람이 배제되는 기본적 추세와 전지의 발전으로 전기자동차가 실용적이 되면서, ‘스스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가 실용화될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이 분야에서 선구적이었던 메르세데스-벤츠와 GM을 비롯해 여러 자동차 제조 기업이 이 궁극적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최근엔 구글까지 가세했다.

삼성은 원래 이건희 회장의 주도 아래 자동차사업에 진출했었다. 그러나 과도한 초기 투자와 독자적 기술의 부족으로 큰 손실을 입고 철수했다. 돌아보면, 참으로 애석한 실패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 회장이 이끄는 삼성은 한국 기업이었고, 그의 애국심은 그로 하여금 자동차사업을 국내에서 시작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만일 그가 기술과 브랜드를 지녔지만 경쟁력을 잃어가는 유럽의 작은 자동차 회사를 인수해 키웠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인도의 타타가 인수한 유럽의 자동차 브랜드들의 성공은 이런 방안의 현실성을 입증한다. 아예 기술의 발전이 가리키는 방향을 잘 살펴서 처음부터 ‘스스로 움직이는 전기자동차’를 겨냥했다면, 더욱 나았을 것이다. 그가 “자동차는 실질적으로 전자제품”이라고 일찍이 통찰했으므로, 아쉬움은 더욱 크다.

어쨌든, 이제 삼성이 자동차 제조에 다시 진출하기는 어렵다. 국내 시장이 너무 작고 이미 현대·기아차가 선점한 상황에서, 특별한 이점 없이 나설 수는 없다. 구글이 ‘운전자 없는 자동차’를 만들려고 결정하고서 동시에 전 세계의 지리와 도로를 정보화해 전략적 이점으로 삼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러스트=추덕영기자 choo@hankyung.com
일러스트=추덕영기자 choo@hankyung.com
(11) 공간의 차원과 수송수단의 효율

근거리에선 1차원적인 철도와 지하철 2차원적인 자동차만 있을 뿐…만일 3차원적인 항공이 이용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변경이 될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사회가 커지면, 통신과 교통은 빠르게 중요해진다. 당연히, 통신산업과 교통산업이 발전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들을 살피면, 자동차 회사와 통신 회사가 유난히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자동차 회사들이 크고 번창한다. “왜 자동차 회사를 만드셨습니까?”라는 물음에 정주영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돈 잘 버는 회사가 모두 자동차 회사라서”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그 점을 일깨워준다.

삼성과 같은 범지구적 기업으로선 일단 교통산업 분야에서 변경을 찾아보려 시도해야 한다. 이미 꽉 차서 발을 들이밀 구석이 없어 보이는 교통산업에 틈새가 혹시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하려면, 먼저 공간의 특질을 살펴야 한다. 영국의 위대한 천체물리학자이자 과학소설 작가였던 프레드 호일은 교통수단이 이용하는 공간의 차원이 높을수록 효율적이어서 빠르게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궤도를 따라가는 철도는 1차원적이고, 도로나 바다를 따라가는 자동차나 배는 2차원적이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3차원적이다. 그래서 자동차가 먼저 놓인 철도를 앞질렀고 항공 산업이 가장 빠르게 자라났다는 얘기다. 항구나 비행장이 병목이 되므로, 그런 차원이 완전히 구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호일의 지적은 참고할 만한 통찰이다.

지금 장거리에선 항공이 압도적이고 철도와 선박이 주로 화물을 나른다. 중거리에선 자동차가 압도적이고 항공과 철도가 뒤따른다. 중거리 이상에선 3개 차원이 다 이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근거리에선 1차원적인 철도와 지하철 그리고 2차원적인 자동차가 있을 뿐, 3차원적 교통 수단이 없다. 헬리콥터가 특수 용도에 이용되지만, 본래 아주 불안정한 비행기여서 대중화되기 어렵고 소음과 바람 때문에 도심에서 운항하기도 어렵다.

만일 근거리에서 항공이 이용된다면,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표가 가능하다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 충분히 사람들에게 꿈을 보여주는 변경이 될 것이다.

(12) 조익기(鳥翼機)

조익기 추진과정서 실수는 나오겠지만 실패할 위험은 거의 없다
전자산업의 선두 기업인 삼성은 조익기 기술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근거리 비행의 모형은 새다. 날개를 만들어서 탈출에 성공한 다이달로스의 신화는 사람들이 늘 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음을 말해준다.새처럼 날개를 위아래로 퍼덕여서 나는 비행기는 조익기(ornithopter)라 불린다. 새를 뜻하는 그리스어 ornithos와 날개를 뜻하는 pteron의 합성어다. 조익기의 설계자들은 새 말고도 박쥐나 곤충들을 모형으로 삼는다. 조익기는 조종사의 근육 힘으로 움직이는 것과 기관에서 동력을 얻는 것으로 나뉜다. 전자는 주로 취미 활동에 쓰이고, 후자가 산업적 고려의 대상이 된다.

프랭크 허버트의 과학소설 ‘사구(Dune)’에서 나는 처음으로 조익기를 만났다. 행성 전체가 사막인 환경에서 커다란 조익기들이 소리 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여러 해 뒤 대전 세계박람회(EXPO)의 러시아관에 들렀다가, 한쪽에 전시된 모형 비행기들 속에서 조익기 모형을 발견했다. ‘흔들이식 날개를 가진 시험 비행기구의 장식 모델(A Demonstration Model of an Experimental Piloted Flapping Wing Aircraft)’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실물은 무게가 450㎏, 추진력 80마력, 날개 길이 8.2m로 시속 150㎞까지 낸다고 했다.

그 뒤로 조익기 개발은 다른 진전이 없었다. 2006년에 캐나다 연구자들이 기관으로 추진되고 조종사가 조종하는 조익기를 만들었는데, 이륙과 비행에 제트의 도움이 필요했다. 진정한 조익기는 아직 나오지 않은 셈이다. 실용적 조익기는 조종사 없이 스스로 날아야 한다.

이런 조익기가 나오려면, 적어도 여섯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1)천천히 퍼덕이는 날개로도 뜰 수 있을 만큼 가벼운 동체 (2)가벼우면서도 튼튼한 날개 (3)적절한 추진 수단 (4)둘레의 물체들을 인식할 수 있는 감지 장치 (5)필요한 정보들을 처리해서 운항할 수 있는 조종 프로그램, 그리고 (6)조익기의 3차원적 성격을 활용할 수 있는 교통통제 체계가 그것이다.

조건 1과 2는 새로운 소재들의 출현으로 이미 충족됐다. 조건 3은 전지의 발전으로 곧 충족될 것이다. 기관과 연료를 싣는 조익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오직 가벼운 전지만이 조익기를 가능하게 할 터인데, 근년에 전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보급은 전지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조건 4는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보급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물론 조익기가 갖춰야 할 감지 장치는 자동차의 그것보다 훨씬 강력하고 정교해야 한다. 특히 돌풍과 도심 빌딩 사이의 난기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발전을 막을 만한 기술적 어려움은 보이지 않는다.

조건 5는 이미 무인비행기의 발전으로 충족됐다. 조건 6은 아마도 충족하기 가장 어려운 조건일 것이다. 사회 기반 시설이므로, 조익기가 보급된 뒤에야 투자가 가능한데, 그런 투자 없이 조익기가 보급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조익기는 얼마나 위험한 사업인가? 답은 명확하다. 실수와 좌절은 나오겠지만, 실용적 조익기 개발이 실패할 위험은 거의 없다.

새의 날개는 자연이 이미 1억5000만년 전에 발명했다. 곤충의 날개는 그보다 거의 곱절이나 오래되었다. 그처럼 오랜 세월 자연이 다듬어냈으므로, 우리는 새와 곤충의 날개를 그대로 본받으면 된다. 특히 바다를 유유히 나는 앨버트로스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날개는 부양과 추진을 동시에 하므로, 조익기는 아주 효율적이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고 기동성이 좋다. 경제적으로도 위험이 없다. 지금은 전혀 이용되지 않는 도심의 3차원적 공간을 교통에 이용하는 것은 매력적 방안이다. 도심의 극심한 교통 체증은 조익기를 자동차를 보완하는 교통 수단으로 만들고 조익기에 대한 투자를 정당화한다.

게다가 조익기는 아름답다. 비행기들도 기계치곤 멋있지만, 100년이 채 못 되는 시간에 사람들이 급히 다듬은 기계라 아득한 세월 동안 자연의 손길이 다듬은 새나 그것을 충실히 본뜬 조익기에 미칠 수 없다. 뭉뚝한 딱정벌레 같은 자동차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기업들 가운데 삼성과 LG는 조익기에 필요한 기술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전자산업의 선두 기업들인 데다 전지 기술에서도 세계적으로 앞섰다. 조익기는 아직 기업은 주목하지 않고 동호인들이 취미로 연구하는 분야다. 멀리 내다보고 관심을 가진다면, 개척자의 자리에 오른 우리 범지구적 기업들이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변경이 될 수 있다. 자동차산업에 다임러벤츠(Daimler-Benz)와 포드(Ford)라는 이름이 깊이 새겨진 것처럼, 조익기 산업에 SAMSUNG이나 LG라는 이름이 새겨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13) 꿈속에서 책임은 비롯한다

삼성은 다시 꿈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책임을 져야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변경을 찾아내 그 길로 과감히 접어들 때다


20여년 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초일류기업이 되어 21세기에도 살아남는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의 비전을 다룬 ‘꿈과 책임’이라는 글에서 나는 “꿈은 위험한 물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 시인 델모어 슈워츠의 시구를 인용했다 “꿈속에서 책임은 비롯한다.”

20년이 지나지 않아, 삼성은 초일류 기업이 되었다. 이 회장은 자신의 꿈을 완벽하게 이루면서 스스로 진 무거운 책임을 벗었다. 이제 그의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자신의 꿈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책임을 져야 한다. 책임을 지려면, 그것에 걸맞은 권한이 있어야 한다. 만일 그가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변경을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꿈으로 보이고 거기 이르는 길로 과감하게 접어든다면, 세상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