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과세하는 방안이 추진된다고 한다. 기업 자금을 가계로 돌려 개인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기 위해서라는데, 정말 한심한 발상이다.

방향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니다. 가계 부채와 내수 부진을 해결하려면 궁극적으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주는 게 옳다. 그러나 방법이 완전히 틀렸다. 국제통화기금(IMF)까지 기업 재무구조를 악화시킬 수 있다며 폐지를 권고한 제도다. 이런 탁상행정이 또 있나.

원인을 알아야 해답이 나온다. 왜 우리 가처분소득은 이 모양일까. 건강한 경제구조에서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역시 30~40대다. 그러면 우리의 30~40대는 어떨까.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5분기와 금융위기 직후 5분기의 고용과 소비를 분석했다. 그 결과 고용시장은 금융위기 직후보다 훨씬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데 반해 소비 증가는 금융위기 직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0~40대의 소비성향 하락이 워낙 커 전체 소비여력에 큰 감소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30~40대의 지갑을 닫게 만드는 것일까. 물론 주거비용이 클 것이다.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의 70%를 30~40대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대출금 갚기에도 버겁다. 그러면 주거비용만 해결하면 될까. 그렇다면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골칫거리는 저출산·고령화의 저주가 가처분소득을 위축시키는 최대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육·교육비와 간병비가 30~40대의 허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30~40대 가계의 ‘엔젤계수’는 무려 17.8%다. 가계 지출에서 보육·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중산층은 더 높아 20%에 육박한다. 게다가 엔젤계수는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더욱 올라간다. 요즘이 딱 그렇다. 다른 데 쓸 돈이 남을 턱이 없다.

간병비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평균 10년6개월간 병치레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 병수발 비용이다. 입원환자의 종일 간병비가 월 200만원이 넘는다. 치매 간병비는 평균 8년간 4960만원이라는 통계도 있다. 맞벌이 부부가 30~40대에는 아이들 키우는데, 40~50대에는 부모 병치레에 허덕인다는 것이다.

이게 어디 기업 사내유보금을 헐어서 해결될 문제인가. 정치권이 노래 부르듯 보육비를 지원하고, 간병비를 건강보험 급여화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답은 시장에 있다. 정부는 그저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물꼬만 터주면 된다.

보육비용을 생각해보자. 근본적인 문제는 보육시설이 적어 아이들을 믿고 맡길 곳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요즘 일부 아파트단지의 성공에서 보듯 1층에 보육시설을 의무화하자. 그렇다고 주민들에게 손해가 가서는 곤란하다. 용적률을 높여준다든지, 지방자치단체가 시설의 운영만 맡는다든지 방법을 찾으면 된다. 50~60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는 일자리가 생긴다. 그것도 근무하기 편하게 요일별·시간별 파트타임이다. 시내 빌딩에도 보육시설을 두면 된다. 기업 사옥 1층에 즐비한 커피가게 대신 말이다. 공단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부가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민간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반대한다고? 차별화해서 충분히 살아남을 방법이 있다. 그걸 설득하지 못하는 정부가 바보일 뿐이다. 그 사람들만 국민인가.

공공시설부터 그렇게 해보자. 그 참에 공공시설 강당을 모두 예식장으로 개방하자. 이런 개념을 모든 곳에 적용해보자. 간병시설도, 교육비용도 마찬가지다. 30~40대 맞벌이 부부들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시켜 주면 가처분소득 증대는 물론 저출산·고령화의 뿌리 깊은 병도 치유할 수 있다.

총소득을 늘려 가처분소득을 늘리고, 소비를 진작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얘기다.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주거 보육 교육 간병 등 가계가 떠안고 있는 막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미래의 불투명성을 제거해주는 일이 급선무다. 그래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되살아난다.

정부가 세금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소비를 부추기겠다는 것은 기업을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로빈후드도 아니고, 이런 생각이 어느 공무원의 책상머리에서 나왔는지. 답답한 노릇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