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상과 벌
2005년 제2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뿐”이라는 영화배우 황정민 씨의 수상 소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각계에서 패러디를 했고 ‘밥상론’이란 말까지 나왔다. 영화를 만든 스태프에게 공을 돌리는 재치 넘치면서도 겸손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은 그 겸손함 뒤에 가려진 연기에 대한 열정과 혼을 잘 알기에 박수를 보낸다. 필자도 교원단체의 장이다 보니 시상대에 서는 경우가 잦다.

재미있는 것은 수상 소감도 많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과거엔 대부분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 일색이었다면 요즘은 농담도 많이 섞고, 특히 젊은 세대에는 약간 으스대며 웃음을 유도하기까지 하는 ‘프로’들이 적지 않다. 참석자들도 딱딱하게 박수만 치는 게 아니라 휘파람을 불거나 이름을 연호하며 분위기를 띄운다. 기쁨을 만끽하는 자유분방함이 보기 좋기도 하다. 하지만 아쉬울 때도 있다. ‘상(賞)’의 참 의미가 흐릿해진 것 같아서다. 시상대에 오른 사람들은 웃고는 있지만 감격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한마디로 예전에 비해 상이 다소 가벼워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상의 남발’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상을 너무 쉽게 주고 쉽게 받는다. 상은 원래 뛰어난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려 주는 것인데, 억지로 칭찬하려고 상을 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도 된다. 반면 벌(罰)의 의미와 빈도는 계속 약해지고 있다. 벌 주기에 인색하고 벌 받기도 싫어한다. 벌의 중요성을 말하면 당장 인권 얘기가 나온다.

칭찬의 ‘상’도 필요하지만 꾸짖음의 ‘벌’이 오히려 인격을 가진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더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귀하게 자란 요즘 아이들은 남에 대한 배려나 협동심이 부족한 것 같다. ‘작은 사회’인 학교에서 권리만 내세우면서 수업을 방해해도 체벌이 금지돼 있으니 제재할 마땅한 방법도 없다. 기껏해야 벌점을 주는 정도인데 이것마저 일부 교육감이 없애겠다고 한다.

학생의 인권에만 치우쳐 벌이 사라지면 선량한 학생들의 피해는 물론 교사의 학생지도는 더욱 어렵게 될 것이다. 상만 있고 벌 없이 자라는 세태가 아이들의 균형 잡힌 성장에도 저해 요인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감격스러운 ‘상’도 중요하지만 냉철한 ‘벌’도 꼭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하고 싶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