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오만해진 구글
“구글의 식민지가 되고 싶지 않다.”(아르노 몽트부르 프랑스 경제장관) “구글을 분리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

유럽에서 터져 나오는 ‘디지털 식민지’에 대한 우려들이다. 구글에 대항할 마땅한 정보기술(IT) 기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유럽으로서는 그 공포감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미디어들은 일제히 ‘데이터 전쟁’이 시작된 게 아니냐며 분위기를 돋우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데이터를 국경 안에 묶어 두는 이른바 ‘데이터 국지화(data localization)’에 대한 보고서가 등장했다. 구글이 후원한 것으로 보이는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를 통해서다. 데이터 국지화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떨어뜨린다는 게 골자다. 분석 대상은 한국,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이다. 데이터 국지화로 구글 비즈니스에 걸림돌이 된다는 국가들이다.

상대방은 무조건 ‘악’?

이 보고서에서 한국은 EU, 중국과 더불어 데이터 국지화로 치달을 경우 GDP 증가율을 1.1%포인트나 까먹는 국가로 분석됐다. 2014년 GDP 증가율이 2.8%에서 1.7%로 1.1%포인트 감소할 것이라는 추산이다. 이쯤 되면 한국은 데이터 국지화로 자살행위를 하는 국가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아무리 시뮬레이션 결과라지만 과연 그 정도일까 하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물론 그에 반해 데이터 국지화가 사라졌을 때 구글이 얻을 이익은 전혀 의심할 여지도 없지만 말이다.

GDP 증가율에 악영향을 준다는 식의 겁박은 사실 미국의 거대 소프트웨어 업자가 주축이 된 사무용 소프트웨어 연합(BSA)이 잘 써먹는 수법이다. 각국의 불법복제율을 발표하면서 이 비율이 몇 % 올라가면 GDP가 얼마씩 감소한다는 식의 논리다. 하지만 GDP의 투입·산출 구조를 고려하면 이런 분석은 대개 과장됐거나 의도된 계산이 들어갔을 것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지나친 단순화도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기 일쑤다. 특히 데이터는 불법복제와 달리 경제적으로만 따질 수 없는, 프라이버시 안보 등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구글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구글은 마치 상대가 무지하거나 악해서 저런다고 몰아가는 듯하다.

‘구글 현지화’는 못하나

구글은 보고서가 나오기 무섭게 한국 금융권에서 일어난 고객 정보유출 사태를 들먹이며 데이터 저장 장소를 규제하는 건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경 내에 데이터를 저장하면 오히려 데이터 유출이나 남용 가능성이 높아지고, 범죄자들의 부정 이용 혹은 해킹의 표적이 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니 데이터를 국경 밖으로 내보내기만 하면 이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구글의 오만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오히려 데이터 국지화의 역풍을 몰고 온 건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인한 구글 등 미국 IT기업에 대한 불신이다. 국경 밖으로 나간 데이터가 정작 미국 정부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이런 마당에 미국에 데이터를 갖다 바칠 나라는 없다. 자국 정부보다 미국 정부를 더 믿으라는 식의 논리는 아예 황당하기까지 하다. ‘데이터 국지화’가 문제라면 ‘구글 현지화’로 돌파구를 열면 어떤가. 구글이 보여야 할 건 투명성과 신뢰성이다. 오만함이 구글의 내리막길 신호라면 불행한 일이다.

안현실 경영과학博 논설·전문위원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