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꺼져가는 성장엔진의 속도 높여라
지난 1분기 예상에 못 미쳤던 한국 경제가 세월호 사태를 맞아 더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5월 이후 직접적인 충격에서 다소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2분기 성장세 둔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소비 활성화를 위한 경기부양 필요성이 제기되는 등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동안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 따른 소비위축에 단기 대응하느라 힘을 쏟았다면 하반기에는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 제고에 물적, 인적 자원을 최대한 집중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무엇보다 하반기에는 미약하나마 경기회복세가 이어지면서 중장기 이슈를 다룰 여건이 마련돼 있다.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충격이 점차 완화될 전망이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경제의 회복세가 이어지는 점도 경기안전판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 하반기는 그 어느 때보다 대내외 리스크가 두드러지지 않는 상황이다. 대안정기의 귀환(great moderation 2.0)으로 묘사되는 금융시장 안정 속에 잠재해 있는 금융리스크가 불거질 수도 있고 미국의 금리인상 및 이와 관련된 신흥시장 금융불안 가능성도 불거지겠지만, 크게 염려할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멀리는 1997년 말의 외환위기에서, 지난 5~6년 사이 미국발(發)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미국의 재정절벽과 신흥국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는 숱한 위기를 겪어 왔다. 그러나 이런 위기들은 단기적으로 금융불안과 실물경기 급락을 불러왔을지라도 위기가 지나면 다시 회복되는 일시적인 성격이 강했다. 장기적인 경제 흐름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경제의 한쪽 다리가 반쯤 빠져들고 있는 위기는 성장세가 지속적으로 가라앉으면서 평균성장률을 낮추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인구고령화와 자본의 한계효율감소로 생산요소의 증가세가 급격히 무뎌지는 가운데 생산성 증가추세가 완만해지고 있다. 지금껏 외부충격에 휘둘리는 신흥국형 경제위기에 시달려온 한국 경제가 이제 자체의 무기력증이 핵심인 선진국형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 경제는 불안정하지만 활력을 가진 경제에서 안정성은 높지만 활력 없는 경제로 가는 변곡점에 서 있다. 안정을 유지하면서 경제활력을 올리거나, 최대한 경제활력의 감퇴를 미루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할 때다. 지난 수십년간 숨가쁘게 달려오는 과정에서 단기부양정책이 경기급락을 막는 데 주효한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빠르게 속도가 떨어지는 경제에서는 자칫 성장의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속도를 높여주는 제도와 틀을 마련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거품과 같은 부작용을 낳거나 미래의 자원을 앞당겨 쓰는 것에 불과할 경우가 많은 단기부양책에 기대어 저성장세를 탈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창조경제와 규제개혁 등 중장기적 안목에서의 정책적 골격은 마련돼 있다.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전략을 실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출발점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소비부진에 대한 대응이 될 수 있다. 당장의 소비부진에 대해 금리인하와 정부지출 확대를 통해 단기적으로 수요를 부양할 수도 있겠지만 연금개혁 등 소비부진의 구조적인 원인을 파헤치고 이를 완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울러 공급측면의 규제개혁과 지원체계를 통해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켜야 할 것이고, 투자와 연구개발(R&D) 활성화에 주력해 내수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조로증세를 보이는 한국 경제가 선진국 초입에서 고꾸라지지 않고 다시 젊은 경제로 거듭나기 위해 올해 하반기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신민영 <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myshin@lger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