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이스케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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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눠먹기가 미덕이던 그 시절
배려와 나눔 배우는 교육 '소망'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
배려와 나눔 배우는 교육 '소망'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
본격적인 여름이다. 여름 하면 시원한 수박과 아이스크림이 떠오른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더위를 식힐 만한 다양한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얼마 전 더위를 식히자며 일행 중 하나가 막대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더위에 지친 터라 반가운 마음에 한 입 베어 무니 시원하고 단 맛에 어릴 적 ‘아이스케키’의 추억이 떠올랐다. 여름철이 되면 드라이아이스가 담긴 스티로폼 통을 짊어진 형이나 아저씨가 ‘아이스 케~키’하며 지금의 ‘아이스크림’을 팔러 다녔다.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아이스케키’는 참으로 귀했다. 부모님께 돈 달라고 할 형편이 못 됐기에 빈 병이나 고철을 주우러 다녔고, 일부는 넉넉한 집 친구를 꼬드기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의 노력을 통해 아이스케키를 사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녹아내릴 때까지 아끼고 아껴 먹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스케키를 혼자 다 먹긴 어려웠다. 아까워서 한껏 깨물어 먹지도 못했고, 친구나 형제들에게 거들먹거렸지만 나눠 먹는 것을 당연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아이스케키를 추억하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시큰둥하게 ‘그랬어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요즘 흔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것 자체가 비위생적이라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이뿐이랴. 한여름 폭염 속에서 몇 시간씩 반 대항 축구시합을 했던 일, 환경미화에 반 전체가 밤낮으로 매달렸던 일도 지금 기준으로는 불필요하거나 비합리적인 위험한 행위다. 매주 운동장에 서서 듣던 교장선생님의 긴 훈화도 이제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 학습권은 보호돼야 하고 이를 저해하는 요소도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지나친 합리성이 아이들을 무미건조한 개인주의의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합리성을 갖추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과거보다 정(情)이나 공동체 의식이 자라날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국가나 교육청이 나서 ‘체험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기보다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정과 공동체의식을 스스로 길렀으면 좋겠다. 아이스케키의 추억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라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과 배려, 나눔의 정서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가 함께 분발할 숙제가 있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아이스케키’는 참으로 귀했다. 부모님께 돈 달라고 할 형편이 못 됐기에 빈 병이나 고철을 주우러 다녔고, 일부는 넉넉한 집 친구를 꼬드기기도 했다. 그렇게 나름의 노력을 통해 아이스케키를 사면 세상에서 제일 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것처럼 녹아내릴 때까지 아끼고 아껴 먹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스케키를 혼자 다 먹긴 어려웠다. 아까워서 한껏 깨물어 먹지도 못했고, 친구나 형제들에게 거들먹거렸지만 나눠 먹는 것을 당연히 여겼기 때문이다. 그 시절 아이들 대부분이 그랬다.
아이스케키를 추억하는 부모들이 자녀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시큰둥하게 ‘그랬어요?’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요즘 흔한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것 자체가 비위생적이라며 고개를 돌릴 것이다. 이뿐이랴. 한여름 폭염 속에서 몇 시간씩 반 대항 축구시합을 했던 일, 환경미화에 반 전체가 밤낮으로 매달렸던 일도 지금 기준으로는 불필요하거나 비합리적인 위험한 행위다. 매주 운동장에 서서 듣던 교장선생님의 긴 훈화도 이제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의 건강과 안전, 학습권은 보호돼야 하고 이를 저해하는 요소도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가끔은 지나친 합리성이 아이들을 무미건조한 개인주의의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합리성을 갖추고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다. 그러다 보니 과거보다 정(情)이나 공동체 의식이 자라날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쉽다. 국가나 교육청이 나서 ‘체험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기보다 친구들끼리 어울리며 정과 공동체의식을 스스로 길렀으면 좋겠다. 아이스케키의 추억처럼 우리 아이들도 자라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과 배려, 나눔의 정서를 가질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가 함께 분발할 숙제가 있다.
안양옥 < 한국교총 회장·서울교대 교수 yangok@kft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