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재보험 허브' 노리는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인구가 530만명에 불과하다. 제조업 성장엔 한계가 있다. 싱가포르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과 해외 금융사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투자은행(IB) 부문은 이미 홍콩이 선점했다. 싱가포르가 금융사 유치를 위해 대안으로 선택한 분야가 재보험이다. 보험사가 체결한 보험계약 일부를 다시 인수하는 재보험은 국경 간 거래가 대부분이다. 세제 혜택 등 유인책에 따라 충분히 해외 금융사 유치가 가능하다는 계산이었다.

글로벌 재보험 중개사인 가이 카펜터의 리처드 존스 대표는 “이 전략은 아주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싱가포르 금융당국의 철저한 규제 완화 정책 덕분에 과거에는 무조건 런던을 찾던 세계 각국의 재보험사들이 이제는 싱가포르로 몰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재보험사의 역외보험에 대한 법인세율을 역내보험(17%)에 비해 7%포인트 줄인 10%로 낮췄다. 건전성 규제 수단인 보험금 지급여력비율(RBC)을 산정할 때도 역외보험에 대해서는 완화된 기준을 적용했다. 외국인 지분이 최대 49%까지만 가능한 제한 규정도 없앴다. 보험 전 종목에 대한 요율은 100% 자율화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0년 이후 싱가포르 재보험 시장은 2.7배(매출 기준) 성장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하던 재보험사도 30여개로 늘었다.

한국 시장에선 정반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행정 지도와 가격 규제로 업계를 통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금융당국의 ‘그림자 규제’로 사업을 접거나 축소하는 외국계 금융사도 있다. 영국 아비바그룹, 네덜란드 ING그룹, 독일 에르고그룹 등이 차례로 한국을 떠났다. 선진 금융기법을 도입해 국내 금융사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줄 것이란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다.외국계 금융사들은 “금융 규제 장벽이 높아 한국서 장사하기 힘든데다 한국 시장에서 영업할 별다른 유인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현상이 싱가포르의 재보험사 유치과정과 겹쳐지면서 국내 금융업계의 글로벌화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정 싱가포르/금융부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