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노사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직원복지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데 합의했다. 근속 격려금 제도는 폐지하고, 구조조정에 관한 결정권은 회사 경영진이 갖기로 했다. 2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이 방만경영 근절을 위한 노사 합의에 성공하면서 5개 발전 자회사 등 다른 공기업들의 노사 협상에도 가속이 붙을 전망이다.

한전, 노사합의 없이 구조조정 할 수 있다
한전은 24일 조환익 사장과 신동진 전국전력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 삼성동 본사에서 직원 복지 제도 축소를 골자로 하는 경영 정상화 합의서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3월 노사 간 공식 교섭채널인 ‘노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한 지 4개월여 만이다.

한전은 이에 따라 10~30년의 근속 연수에 따라 5년 단위로 40만~120만원을 지급하던 장기근속 격려금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산업재해를 당해 일을 쉴 때 지급해왔던 휴업 급여도 폐지하기로 했다. 한전은 업무상 재해에 따른 휴업자에게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하는 산재급여 외에 회사 차원에서 월급의 30%를 별도로 지급해왔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순직자에게 보상비 외에 순직 조위금으로 1억5000만원을 지급하던 제도도 없애기로 했다. 이와 함께 경조 휴가 일수도 48일에서 26일로 줄였다.

중·고생 학자금 제도도 공무원 수준으로 조정됐다. 중학생 자녀에게 연 500만원 한도에서 지급하던 학자금은 폐지키로 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에게는 185만원만 지급하기로 했다. 현금으로 연간 30만원씩 지급하던 노조창립일 등 기념일 지원비는 온누리 상품권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퇴직 예정자에게 지급하던 200만원어치 온누리 상품권은 120만원으로 줄였다.

노사는 이와 함께 노조 합의가 없어도 회사 측이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지금까지 직원 감원 시 고용안전위원회와 사전 ‘합의’를 해야 했지만 이를 ‘협의’ 수준으로 완화한 것. 월급의 25%를 지급하던 육아휴직 급여는 폐지하고, 질병 휴직 시 지급하던 급여는 기본급의 100%에서 70%로 바꿨다.

하지만 아직 노사 합의가 완전히 이뤄진 것은 아니다. 사측은 정부가 제시한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이행방안’에 따라 퇴직금 산정 시 기준이 되는 평균임금에서 경영평가 성과급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노조는 이를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맞서고 있다. 한전은 오는 8월까지 퇴직금 정산기준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다.

공기업 중 ‘맏형’ 격인 한전 노사가 복지 혜택을 줄이는 데 합의하면서 동서 남동 중부 서부 남부 등 5개 발전사와 다른 에너지 공기업들도 적잖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상희 산업통상자원부 창조행정담당관은 “한전은 수많은 공기업들에 ‘나침반’ 역할을 하는 기업인데다 발전 회사의 모기업이기도 한 만큼 다른 공기업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