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빛줄기…차지게 버무린 손가락의 마술
서양화가 오치균 씨(57)의 그림에서는 강렬한 생명력과 몽환적인 빛에너지가 뿜어져 나온다. 오는 11~25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오씨는 빛을 통해 육체적인 치유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달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최근작 ‘램프’ ‘감’ 시리즈 등 30여점을 건다.

오씨는 “최근 3년간 빛을 화폭에 담아내려 해온 것에는 주변 사람의 병고와 죽음, 아픔 등 역경을 체험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0년 동안 외부와 소통을 자제하며 그림만 그렸어요. 6~7년 전 어느 날 갑자기 1500만원 하던 제 그림이 5억~6억원까지 치솟으면서 순식간에 성공한 작가로 떠 버렸습니다. 그런데 외로움이 더 크게 다가왔죠. 지난여름에는 심한 공황장애가 와서 무릎 아래가 마비돼 걸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됐어요. 그걸 극복하기 위해 ‘빛’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겁니다.”

고달프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빛의 프리즘을 통해 ‘색다른 쉼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오씨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이 겪은 다양한 기억을 바탕으로 빛에 대한 이야기를 양파 껍질 벗기듯 풀어냈다.

“유년 시절 고향 땅(충남 대덕)에 대한 기억이 이제는 그리움으로 변했고, 거기서 느꼈던 빛은 어떤 시보다 강렬하게 제 귓속에 바삭거립니다. 마티스의 선이 갈수록 단순해졌듯 빛에 관심을 계속 두다 보니 무언가 보이는 것 같더군요.”

한낮의 햇빛을 머금은 풍경, 불빛에 물든 감, 여명처럼 빛나는 램프 등을 그린 작품에서는 뭉게구름 같은 ‘희망의 선율’이 느껴진다. 손가락으로 칠한 두꺼운 마티에르(질감)와 능숙한 손맛 역시 압권이다. 다양한 리듬으로 휘몰아 감기고 뻗어 나가는 빛줄기들은 현대인과의 소통 방식을 드러낸다.

“처음에는 사북, 산타페, 뉴욕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그려보면서 연구했는데, 사실적이기는 하나 자연의 생명력이 느껴지질 않았어요. 그래서 빛이라는 허상을 통해 실제의 사실적 모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죠.”

서울대 미대와 미국 브루클린대에서 공부한 오씨는 붓 대신 손가락으로 물감을 두껍게 발라 덧칠하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을 활용해 시골 감나무와 강원 사북면 탄광촌, 서울,뉴욕 등의 풍경을 주로 그려왔다. 1998년작 ‘사북의 겨울’(108×162㎝)이 2007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6억181만원(약 503만1500홍콩달러)에 낙찰돼 자신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