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반(半)피아
“내 장례식에서 네게 다가와 적과 화해를 권하는 자가 바로 배신자다!” “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지….” 영화 대부의 대사들이다. 마피아는 그렇게 영화 속에서 매력남들로 거듭났다. 개성 있는 배우들, 일상과는 거리가 먼 장면들, 겉멋이 잔뜩 들어간 핏빛 선명한 대사들…. 그러나 조폭 얘기일 뿐이다.

영화는 암흑가의 이탈리아계 범죄집단을 요즘 말로 ‘간지나게’ 만들어 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나약한 악당들이다. 과도한 패밀리 의식, 결탁과 유대, 서열, 비열한 복종, 그러나 필연적인 배신…. 마피아의 그런 속성에 빗댄 것일까. 금융관료들이 금융계를 장악하고 영토를 넓혀가며 후임자에 세습하는 과정이 그랬다는 의미였을까. 모피아는 슬그머니 고유명사처럼 돼버렸다.

모피아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로 해수부 OB(old boy·퇴직 관료)와 YB(young boy·현직)의 저급한 연결고리들이 도마에 올랐다. 바다를 매개로 한 해(海)피아의 천하 철밥통도 모피아 못지않았다. 교육관료들의 교(敎)피아까지 언급되더니 전체 관(官)피아 차원의 문제로 커졌다. 또 하나의 쏠림인가. 봇물 같은 관피아 고발에는 끝이 없다.

이번엔 법(法)피아라고 한다. 총리 후보자 안대희 씨의 5개월간 고액 수임료 얘기다. 행정 관료들뿐 아니라 사법부도 마찬가지라는 냉소가 깔려있다. ‘우리끼리!’, 전관예우 문화는 법조계가 더한 것 아니냐는 질책이다. 정말로 법앞에 모두가 평등한가라고 묻는 쓴소리기도 하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공무원들의 반발도 있다. 관(官)은커녕, 이젠 관(棺)피아라는 자조다. 좋은 시절은 가고 완전히 다 죽게 됐다고 지레 앓는 소리다.

반(半)피아에 주목하라는 충고도 있다. 반피아는 무엇보다 고시출신이 아니다. 공직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도 아니다. 교수, 국제기구 경력자, 민간 이코노미스트 등으로 늦깎이로 공직자가 된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낙하산들도 많다. 그렇게 요직을 단박에 접수한 민간 전문가들이 요즘 스스로를 “우리는 반피아”라고 쓴웃음을 짓는다고 한다.

반피아들이야말로 관피아의 폐해도 잘 안다. 공무원들의 꿈과 공명심, 고충과 헌신까지도 잘 아는 이들이다. 관료들 틈새서 은근한 왕따도 받아보았다. 반피아라는 규정에 본인은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장관급을 지낸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 박종구 한국폴리텍대 이사장, 이창용 IMF 아태국장처럼 성과를 낸 이들이 많다. 반피아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