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김창겸 씨의 ‘삐딱한 레고’.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된 김창겸 씨의 ‘삐딱한 레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6년 저서 《부의 미래》에서 “3D프린터는 상상하지 못했던 그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예측했다. 불과 8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대로 3D(3차원)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디자인해 복잡한 공정을 거치지 않고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예술 창작 패러다임에도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은 이 ‘21세기의 연금술’이 미술에 미치게 될 영향과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기획전을 연다. 15일부터 7월6일까지 열리는 ‘3D프린팅과 예술: 예술가의 새로운 창작도구’전이다.

예술에서의 3D프린터 활용 가능성은 이미 2000년대 초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됐다. 그러나 일반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월스트리트저널, 타임매거진 등 세계적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면서부터다. 19세기 초 사진이 등장해 예술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꿔놨듯이 3D프린터는 형태 제작의 한계와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예술 창조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냈다. 특히 상상 속에서만 가능하고 실제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형태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은 예술가들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노세환 씨의 ‘붉은 사과와 복제물’. 사비나미술관 제공
노세환 씨의 ‘붉은 사과와 복제물’. 사비나미술관 제공
국내에선 3D프린터의 개발과 보급이 상대적으로 더뎌 예술가들에게는 아직 낯선 게 현실. 사비나미술관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대림화학으로부터 보급용 3D프린터와 필라멘트(재료)를 무상으로 지원받는 한편 여러 차례 워크숍을 열어 작가와 토론을 거치며 전시를 꾸렸다.

이번 전시에는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신진 및 중견 작가 21명이 참여했다. 1부 ‘상상의 도구, 3D프린터’에서는 이 새로운 도구가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타진한다. 베른트 할프헤르(독일)는 전쟁과 대립이 지속되고 있는 분쟁 지역의 무기, 테러 이미지를 3D프린터로 입체화한 ‘모닝 마운틴즈’를 선보인다. 김승영과 유기태는 3D프린팅의 실패작과 미완성작을 탑처럼 쌓아올려 인간의 불완전성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댄 마이크셀(미국)은 먼 거리의 미세한 소리를 선택적으로 들을 수 있는 사막여우의 청각기관을 상상적으로 재구성해 3D프린터로 출력했다.

2부 ‘혁신적 복제의 도구, 3D프린터’에는 3D프린터를 통한 재현 기능에 주목한 작품들이 나온다. 3D설계, 3D스캐너를 이용해 인간이 감지할 수 없는 부분을 완벽하게 복제해 보여준다. 권혜원은 동대문역사공원 내 이간수문의 표면을 3D스캐닝과 3D프린팅 방식으로 탁본해낸다. 박기진은 종이컵 하나를 재현하는 데 필요한 기계적 연산어를 A4지 17만5000장에 출력해 삶과 기계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게 한다.

전시를 기획한 강재현 사비나미술관 전시팀장은 “3D프린터가 가져다 줄 시각예술의 변화를 가늠하고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거칠지만 개성 있는 형태로 연출된 최초의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02)736-4371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