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더 美 법무 "大馬 불기소 없다" 대형銀 2곳 형사처벌 시사…월가 '긴장'
미국 법무부가 크레디트스위스와 BNP파리바 등 2개 유럽계 대형 은행을 형사기소하겠다고 밝히자 두 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면 연기금 등 법인 고객들이 거래를 중단해 사실상 영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릭 홀더 미 법무장관은 5일(현지시간) 주례 연설에서 크레디트스위스와 BNP파리바 수사와 관련, “‘대마(大馬)불기소(too big to jail)’는 없다”며 “아무리 규모가 크고, 아무리 이익을 많이 내도 법 위에 군림하는 개인이나 회사는 없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대형 은행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정부가 망하게 놔두지 않는다는 뜻의 ‘대마불사(too big to fail)’에 빗대어 대형 은행들이 법을 어겨도 형사처분을 받지 않는다는 의미의 ‘대마불기소’ 관행을 척결하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크레디트스위스는 미국 부유층들에 비밀계좌를 개설해 줘 세금 회피를 도운 혐의를 받고 있고, BNP파리바는 미국 정부가 제재하고 있는 이란, 수단과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은행이 형사기소를 당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중앙은행(Fed)은 미국에서의 은행 면허 취소 등 각종 제재 조치를 할 수 있다. Fed가 금융시장 충격을 감안해 면허 취소를 하지 않더라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다. 연기금 등 상당수 기관투자가가 내부 규정에 범법 은행과의 거래금지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신인도 하락도 불가피하다.

뉴욕타임스는 “법무부의 이번 조치는 25년 만에 대형 금융회사의 첫 형사 기소 사례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1989년 채권전문 증권사인 ‘드렉셀 번햄 램버트’는 내부자 부당거래로 형사 처분을 받은 뒤 파산했다. 또 회계법인이긴 하지만 2001년 엔론사태 땐 회계부정을 방조한 혐의로 아서앤더슨이 형사기소 이후 영업 정지를 당해 결국 파산했다. 그 후 법무부는 금융회사 등에 대한 형사 처분을 꺼려왔다. 기업 파산으로 수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홀더 장관은 지난해 3월 의회 청문회에서 “은행 규모가 너무 커져 이들을 형소기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가 정치권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이날 발언은 기존 방침의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홀더 장관은 지난주 스위스 재무장관을 만나 크레디트스위스에 대한 형소기소 방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조세회피 혐의로 조사를 받은 스위스계 은행 UBS는 당시 7억8000만달러의 벌금 및 과징금을 내고 형소기소를 피했지만 앞으론 이런 관행을 없애겠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으로 보인다.

문제는 형소기소와 유죄 판결이 가져올 금융시장의 파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와 관련, 미 법무부가 은행들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면허 취소 및 영업 정지 조치를 당하지 않도록 Fed와 협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크레디트스위스와 BNP파리바는 유죄 인정과 함께 과징금 등을 내면서 형량을 줄이는 방안을 법무부와 협상하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는 10억달러 이상을, BNP파리바는 20억달러의 벌금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