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두 나라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예술은 각 나라의 아름다운 자연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노르웨이 작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앞에 서면 아득히 먼 곳까지 처절한 외침이 울리는 것 같다. 그림 속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전이돼 가슴이 저릿해진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콘셉트로 만들어진 핀란드의 디자인 제품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고픈 욕망이꿈틀거린다. 두 나라의 예술은 깊은 공감과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마법 같은 힘으로 여행자를 유혹한다.

뭉크는 왜 절규했을까?

뭉크의 ‘절규’
뭉크의 ‘절규’
노르웨이는 유럽의 서북쪽 끝이다. 나라 이름을 풀이하면 ‘북쪽으로 가는 길’이다.살인적인 물가, 혹독한 추위와 겨울철의 짧은 낮 시간 등 여행자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 요소들이 지뢰밭처럼 널려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은 모든 것을 감수하고 오슬로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다. 빙하가 빚어낸 ‘대자연의 예술품’ 피오르에서 치유받기 위해, 그리고 뭉크의 ‘절규’를 직접 보는 감동을 맛보기 위해서다. 뭉크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가다. 뭉크에 대한 노르웨이 사람들의 자부심은 각별하다. 지폐에 그의 초상을 그려 넣을 정도다. 그의 대표작 ‘절규’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생전의 뭉크는 ‘절규’를 불러왔던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죽어서는 북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미술가로 자리잡았다.

뭉크는 1863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활동하던 시기에 중서부 유럽은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지만 머나먼 북쪽 땅 노르웨이는 문화적으로 철저한 변방이었다. 북쪽 나라에서 태어난 천재는 병약하고 가난했다.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 누이의 우울증으로 인해 그의 삶에는 언제나 불안이 감돌았다.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낸 뭉크는 파리, 베를린 등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항상 이방인이었다. 순탄치 않은 애정사는 그에게 여성 혐오라는 상처를 남겼다.

내면을 그려낸 ‘절규’ 속에는 그의 인생이 오롯이 녹아 있다. 뭉크의 그림 속 인물은 절규라는 뜻 그대로 있는 힘을 다해 절절하고 애타게 무언가를 부르짖고 있지만 뒤이어 등장하는 두 사람의 무심한 표정으로 인해 주인공의 고립감과 절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뭉크를 만나러 가는 길

‘절규’ ‘마돈나’를 비롯한 뭉크의 오리지널 작품은 오슬로 시내 국립박물관과 뭉크미술관 두 곳에 전시돼 있다. 뭉크는 1944년 세상을 떠나며 유작들을 오슬로시에 기증했다. 유화 1008점, 드로잉 4443점, 실크스크린 1만5931점, 석판화 378점, 에칭화 188점, 목판화 148점, 석판화용 석판 143점, 동판 155점을 비롯해 수많은 사진과 일기 등 방대한 양이다.

뭉크미술관은 1963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그림은 단연 ‘절규’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그림을 배경으로 ‘절규’하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뭉크의 ‘절규’는 오슬로의 두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3점과 개인 소유인 1점 등 여러 버전이 있다. 개인이 소장했던 작품은 2012년 소더비 경매에서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인 1억1990만달러(약 1355억원)에 낙찰됐다. 이 그림은 1994년과 2004년 두 차례의 도난 사건을 통해 그 가치를 증명하기도 했다.첫 번째 도난당한 그림은 무사히 돌아왔지만 두 번째 그림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회수됐다. 복원 전문가 5명이 꼬박 2년을 원상복구에 매달렸지만 여전히 절도의 상처는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미국 FBI가 선정한 ‘세계 10대 미술품 도난 사건’에 오르며 다시 한번 뭉크의 유명세를 확인해줬다. 오슬로에는 미술관 말고도 ‘절규’와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그림의 무대가 된 ‘베케르베르크 다리’다. 입구에는 이곳이 ‘절규’의 배경임을 알리는 동판이 붙어 있다.
오슬로 ‘비겔란 조각공원’엔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의 단계를 표현한 조각품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오슬로 ‘비겔란 조각공원’엔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의 단계를 표현한 조각품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오슬로의 또 다른 볼거리들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의 ‘비겔란 조각공원’은 ‘북구의 로댕’이라 불리는 작가가 평생 동안 남긴 모든 작품을 드넓게 펼쳐진 공원에 배치한 아름다운 곳이다. 30년에 걸쳐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의 단계를 표현한 조각품 200여점이 공원에 전시돼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진 인생의 희로애락을 대면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오슬로의 오페라 하우스. 웅장한 규모와 현대적 디자인으로 노르웨이의 자랑이 됐다.
오슬로의 오페라 하우스. 웅장한 규모와 현대적 디자인으로 노르웨이의 자랑이 됐다.
2004년 개관한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는 7500억원을 들여 건축한 노르웨이의 자랑이다. 1360여석 규모의 대극장, 440여석의 보조 극장을 비롯한 연습실 등 1100개의 방이 있는 이 건물은 바다를 매립해 만들어졌다. 이 밖에도 현대미술박물관과 건축박물관, 바이킹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오슬로 시내에 있다.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 등에서 오슬로 패스를 미리 구입하면 박물관 입장과 대중교통 이용이 무료다.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인테리어 매장에 비치된 조명사이로 바라본 거리의 모습.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인테리어 매장에 비치된 조명사이로 바라본 거리의 모습.
고요하고 강렬한 힘, 핀란드의 모든 것

핀란드에 도착해 처음 받은 인상은 모든 것들이 차분하고 고요하게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옹골찬 기운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자연, 사람, 심지어는 그들이 만든 물건들도 모두 같은 느낌이다. 나라 전체의 모든 것이 속이 꽉 찬 지혜로운 사람을 대면하는 듯해서 위안을 받기도 하고, 압도되기도 하며, 부럽기도 하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 거침없는 힘은 디자인 분야에서 폭발했다. 핀란드는 세계적인 디자인 강국이다. 수도 헬싱키에 뻗어 있는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북유럽의 많은 볼거리 중 가장 매력적이다. 헬싱키 시내 중심부의 다이애나 공원을 중심으로 에스플라나다 남쪽에서 북쪽, 에로타얀크, 우덴만카투 거리에 170여개의 디자인 관련 상점들이 모여 있는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여행자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선사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대의 화두로 삼는 사람들의 나라 핀란드는 북유럽 3국 중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인지 핀란드의 디자인 제품들은 유려하게 펼쳐진 자연과 멋진 의식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독창적이고 기능적이며 자연 친화적이고 편안하다.
헬싱키의 디자인 디스트릭트. 눈길이 가는 모든 곳이 정제된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다.
헬싱키의 디자인 디스트릭트. 눈길이 가는 모든 곳이 정제된 디자인으로 채워져 있다.
도시 전체가 디자인 박물관

그림같이 펼쳐진 피오르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그림같이 펼쳐진 피오르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구불구불 난 길을 따라 빼곡히 들어선 디자인 상점들 대부분은 오후 5~6시에 문을 닫는다. 마음이 바빠졌다. 계획적으로 둘러보기 위해선 전략이 필요하다. 헬싱키 관광 안내소에서 지도를 구했다. 각 상점마다 부여된 구역번호와 간단한 숍 소개, 전화번호 등이 표기된 지도를 손에 넣으니 천군만마를 곁에 둔 것처럼 든든하다. 우덴만카투 거리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디자인 디스트릭트의 많은 구역 중 가장 많은 상점이 모여 있어 효율적이라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창의적이고 기발한 디자인의 구두, 세밀하게 세공된 은제품, 근사한 패브릭 제품, 사랑스러운 이바나 헬싱키의 옷, 세월의 향기가 짙게 배인 다양한 앤티크 소품, 모던하고 세련된 핀란드 신진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소품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우덴만카투 거리의 수많은 개성 있는 상점들 중에서도 가장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하는 곳은 단연 ‘secco’다. 재활용품과 엄청난 아이디어가 결합된 재기 발랄하고 아기자기한 디자인 제품이 가득하다. 쌀 가마니로 만든 조명, 지퍼로 만든 브로치, 폐타이어로 만든 가방과 넥타이 등 위트 넘치는 제품이 가게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라비아 팩토리에는 쇼핑욕구를 자극하는 예쁜 주방용품들이 가득하다.
아라비아 팩토리에는 쇼핑욕구를 자극하는 예쁜 주방용품들이 가득하다.
엘오타잔 거리 광장 앞에 있는 디자인 포럼에서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조명, 패브릭, 주방용품, 문구에 이르는 다양한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디자인 관련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와 쉬어갈 수 있는 카페까지 있어 일석이조다.
사람을, 자연을 위한 예술이 숨쉬는 곳…노르웨이 핀란드
노르웨이 여행정보

노르웨이는 유로화 대신 ‘크로네’라는 고유 화폐를 쓴다. 1크로네는 약 200원. 한국에서 직항은 없다. 통상 핀란드 헬싱키를 경유해서 가거나 유럽의 다른 도시들을 경유한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aell)’은 오슬로에서 베르겐까지 가는 황금 루트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이용한다. 동쪽 해안에 있는 오슬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지금의 수도이고, 서쪽 베르겐은 12~13세기 ‘한자동맹’ 시절 만들어진 옛 수도다. 오슬로 패스와 베르겐 패스를 이용하면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오슬로(visitoslo.no)베르겐 웹사이트(visitbergen.no)에서 얻을 수 있다.오는 7~10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뭉크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아르텍 매장의 내부.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다.
아르텍 매장의 내부.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다.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를 만나다

가장 맛있는 것을 마지막에 먹는 버릇이 있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를 만난 후 느끼는 감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여행을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에로타잔크 거리에서 에스플라나드 방향으로 이동하면 ‘아르텍(artek)’ 매장이 있다. 의자의 제왕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이자 현대 건축의 거장인 알바알토가 1935년에 설립한 이 회사는 스칸디나비안 스타일의 인테리어 제품이 모여 있는 별천지다. 알바알토가 디자인한 역사적인 디자인 제품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아이노 알토가 디자인한 패브릭 제품과 인테리어 소품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이들 제품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에스플라나드 거리 남쪽에 아르텍이 있다면 북쪽에는 마리메코와 이탈라가 있다. 마리메코는 핀란드 최고의 패브릭 브랜드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차용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은 마리메코 원단 속에 오롯이 투영됐다.

마지막으로 이탈라에 들러보자. 아르텍을 창시한 천재 알바알토와 그의 부인 아이노 알토, 그리고 또 다른 천재 디자이너 가이 프랭크의 제품들이 이탈라에 결집돼 있다. 그들의 영향을 받은 후대 디자이너들의 아름다운 제품이 가득하다. 기능적인 디자인과 수려한 모양새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제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좋은 디자인이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시킬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사람을, 자연을 위한 예술이 숨쉬는 곳…노르웨이 핀란드
핀란드 여행정보

전 국토의 75%가 숲으로 덮여 있으며 약 19만개의 호수와 17만개의 섬이 있는 핀란드는 그림 같은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북쪽 지방의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70여일간 계속되고 겨울에는 한낮에도 해를 볼 수 없는 카모스 현상이 있다. 기후가 좋아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겨울이 따뜻하다. 헬싱키의 경우 겨울 최저 기온이 영하 6도, 여름 최고 기온이 20도를 넘지 않는다.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은 7월과 8월이다.통화는 유로를 사용한다.핀에어를 이용하면 인천에서 헬싱키까지 직항으로 연결된다.트램과 버스, 메트로(지하철)가 주요 교통수단이다. 요금은 동일하며 하루 세 번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투어리스트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버스나 메트로에 비해 주요 관광지를 순회하는 빈도가 높은 트램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며 구석구석 볼거리가 많은 디자인 디스트릭트에선 걷는 게 낫다.디자인 디스트릭트를 체계적으로 구경하고 싶다면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된다. 두 시간 동안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가격은 16유로. 자세한 내용은 웹사이트(helsinkiexpert.fi) 참조.

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