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 부진 탈출 '4社 4色'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을 만들어 얻는 이익인 정제마진 축소로 어려움에 처한 국내 정유사들이 경영난 극복을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는가 하면 원가 절감, 원유 도입처 다변화, 사업 다각화 등 회사별로 추진하는 위기타개 전략도 다양하다.

20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울산에 중질유 분해 설비를 신축하기 위해 최근 미국 엔지니어링 회사인 포스터휠러와 기본설계 계약을 맺었다. 2017년까지 5조원을 투자해 정제시설 등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던 지난해 사업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에쓰오일은 지난달 한국석유공사로부터 매입한 울산 석유비축기지 부지에 고도화 설비인 중질유 분해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정유사는 원유를 1차 정제해 나오는 벙커C유 등 값싼 중질유를 재처리해 경질유로 바꾸는 고도화 물량이 많을수록 수익성이 좋아진다.

현재 에쓰오일의 고도화 비율은 22.1%로 업계 선두권(34%대)에 못 미친다. 하지만 새 설비가 완공되면 2018년부터 에쓰오일의 중질유 생산 비중은 12%에서 4%로 떨어지는 대신 휘발유·경유·윤활기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은 96%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이 회사는 2018년부터 3조원을 추가로 투자해 폴리프로필렌 등 유화원료 생산설비도 증설할 계획이다.

GS칼텍스는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플라스틱(복합수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중국 랑팡과 쑤저우에 이어 지난해 말 체코와 경남 진주에 연이어 복합수지 공장을 완공해 연간 생산 규모를 19만t으로 늘렸다. 2016년까지는 연산 24만t까지 설비를 더 늘릴 계획이다.

화학섬유 원료인 파라자일렌(PX) 합작사업도 부지조성 공사에 본격 나선 만큼 하반기부터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지난해 1조3000억원을 투자해 고도화 비율을 국내 최고인 34.6%까지 높인 만큼 유화사업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1위인 SK에너지는 고도화 물량 확대와 원유도입 최적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연초 고도화설비 공정효율화 작업을 시작한 이 회사는 지난해 출범한 계열사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을 통해 원유조달 비용을 낮춰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후발주자인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9일 울산에 유류저장시설을 완공하고 터미널 사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 회사는 정유사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지난 1월 롯데케미칼과 합작으로 유화제품 원료인 혼합자일렌(MX) 공장을 착공했다. 다국적기업인 쉘과 함께 세운 현대쉘베이스오일은 상반기 중으로 윤활기유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올 들어 회복세에 접어들고 있는 정제마진이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2분기부터 정유사들 실적이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작년 1분기 배럴당 11달러대였던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4분기 7달러대로 떨어졌다가 올해 1분기에는 9달러대로 올라섰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