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이대로 가면 마사회는 망한다”며 “삼성 스타일을 접목해 조직에 도전정신을 심겠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은 “이대로 가면 마사회는 망한다”며 “삼성 스타일을 접목해 조직에 도전정신을 심겠다”고 강조했다. 최만수 기자
“말 빼고 다 바꾸자.”

현명관 한국마사회장이 ‘마사회의 신경영’을 선언했다. 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한 이후 삼성그룹 비서실장을 지내며 개혁을 이끌었던 현 회장이 그때처럼 다시 개혁의 깃발을 들어올린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인 그가 지난해 12월 취임할 때부터 변화는 예고됐다. 하지만 개혁의 강도는 임직원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지난달 30일 한국마사회 노사는 500명 이상 공기업으론 처음으로 ‘방만경영 정상화 이행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했다. 1인당 연간 919만원에 달하던 복리후생비는 547만원으로 47% 삭감된다. 고객감동 실천, 말산업 육성, 사업 다각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10대 혁신과제’도 발표했다.

현 회장은 “개혁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조직의 체질을 확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사회는 지나친 복리후생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으며 매출은 3년째 정체다. ‘마사회=경마=도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굳어졌다. 그는 “이대로 가면 마사회는 망한다”고 단언했다. 현 회장을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공원에서 만났다.

▷방만경영 개선 과정에서 노조의 반발이 심했을 것 같다.

“노조와 수없이 만나 설득했다. 자녀 학자금이나 선물비가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국민에게 외면받으면 마사회의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그래서 다른 공기업보다 먼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이자는 데 합의했다. 노조가 상급기관(한국노총)의 투쟁 지침 때문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회사의 뜻에 공감해줬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삼성 시절의 경영 원칙이나 경험을 반영할 것인가.

[월요인터뷰] 현명관 회장 "공기업에 '삼성 스타일' 과감히 접목…말 빼고 다 바꾸자"
“마사회에는 공기업이라는 태생적 특성과 사업 특성상 경영 자율성을 제약하는 규제나 법률이 상당히 많다. 문제는 규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다. 임직원들이 도전하기보다는 외부 환경을 탓하고 실천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태도가 내성화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런 조직문화를 없애기 위해 철저한 성과주의, 신속한 의사결정 등 ‘삼성 스타일’을 접목해 나가고 있다. 삼성에서 하루면 될 일이 여기선 열흘 걸린다. 불필요하게 장황한 문서 보고를 없애고 구두 보고를 원칙으로 바꿨다.”

▷그 전에도 마사회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마사회장의 임기는 3년이다. 모든 것을 바꾸기에는 시간이 짧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직에 도전정신이라는 씨앗을 심는 것이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10%다. 이런 사람들을 만들고 나가면 퇴임 후에도 지속적인 개혁이 이뤄질 것이다. 도전하고 성취하는 직원에게는 승진과 임금 인상 같은 포상을 충분히 할 방침이다. 호봉제 중심인 임금을 성과 중심으로 바꾸고 같은 직급이라도 급여가 3배 이상 차이 나게 할 것이다. 승진시험은 전면 폐지한다. 시험으로 승진하고 이후에 해이해지는 인사제도는 1970년대 방식이다. 올해 안에 이런 개혁을 마무리할 것이다.”

▷인사제도 말고 또 적극적으로 개혁할 부분이 있는가.

“교육이다. 일류 인재가 일하는 곳이 일류 회사다. 지난번 마사회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이 521 대 1이었다. 이런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일류 인재들이 공기업에선 금세 경쟁력을 잃어버린다. 도전하기보다 안주하기 때문이다. 자녀 학자금보다 더 중요한 복지는 교육이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일류가 될 수 있도록, 회사를 떠나더라도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을 수 있도록 전문교육을 시킬 것이다. 말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육성할 계획이다.”

▷업(業)의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마사회 업의 정의는 무엇인가.

“말을 테마로 하는 엔터테인먼트다. ‘마사회=경마’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말을 중심으로 한 레저, 문화, 관광 등이 모두 마사회의 업이다. 과천경마공원을 자연생태계 테마공원과 어우러진 가족공원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장외발매소는 백화점 문화센터를 능가하는 지역주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이다. 올해 안에 장외발매소 1곳을 선정해 시범 실시하고, 문제점을 보완해 전면 시행할 생각이다. 이를 통해 매출 정체 상태를 벗어나고 경마는 도박이라는 국민의 인식도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경마는 더 재미있고 익사이팅해야 한다. 삼성은 1년 단위로 신제품을 내놓는데 마사회는 20년 전과 똑같은 상품을 내놓고 있다. 이래선 안 된다. 우선 국제경마를 더 자주 열려고 한다. 일본, 중국 말과 우리 말을 경쟁시켜 기수와 말의 능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서다.”

[월요인터뷰] 현명관 회장 "공기업에 '삼성 스타일' 과감히 접목…말 빼고 다 바꾸자"
▷말 산업의 가치와 전망은 어떤가.


“말을 교배하고 기르고 경마에 활용하는 등 모든 게 말 산업이다. 승마와 재활승마, 말을 이용한 청소년 힐링까지 융복합이 가능한 산업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커 창조경제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볼 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골프가 각광받지만 3만달러 시대에는 승마가 뜰 것이다. 유소년 승마 보급, 찾아가는 방과 후 승마교실 등을 통해 2~3년 안에 승마 저변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

▷정부가 마권 구입 때 신상정보가 입력된 전자카드를 사용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실명을 공개하고 편안하게 베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나. 전자카드제를 시범 운영한 마권 장외발매소(인천 중구, 창원, 대구)의 매출은 20% 이상 감소했다. 전자카드를 도입하면 경마산업의 존립까지 위협할 수 있다. 경마 매출 하락은 국가 재정과 농축산발전기금의 문제로 이어진다. 사행심리를 합리적으로 조절해야 한다. 지나치게 규제하면 불법 도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삼성물산 시절 ‘현 대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다. 지금도 그런가.

“사소한 부분들이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마사회에서 직접 챙기는 부분은 고객 서비스다. 여기 와 보니 직원들의 친절이나 경마공원 내 음식의 질이 떨어진다는 걸 느꼈다. 요즘은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모든 고객 민원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 지하철 역사부터 주차, 경마 관전, 베팅, 식사까지 모든 접점에서 고객 서비스를 개선할 것이다. 서비스산업의 핵심은 친절이다.”

▷공직에서 삼성으로, 공기업으로 끊임 없이 변신했다. 앞으로 남은 도전은.

“젊었을 땐 내 능력이 탁월해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돌아보니 부모, 국가, 사회, 회사 등 여러 곳에서 엄청난 투자를 받았다.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마지막 남은 내 일이다. 정치는 안 맞는 것 같다. 골프 치고 해외여행하며 쉴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보다는 사회의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멘토 역할을 할 생각이다.”

현명관 회장은

현명관 마사회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도전》이라는 자서전 제목처럼 공무원, 대기업 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제주지사 후보, 마사회장 등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현 회장은 1941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1965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부산시와 감사원에서 7년여 동안 근무하다 돌연 사표를 내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선망의 직장이었던 감사원을 박차고 나와 1978년 삼성에 입사한 것은 ‘이제는 경제시대’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1993년 비서실장 자리에 올라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을 보좌했다. 고(故)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경영을 배우고 도전정신을 더욱 키웠다고 한다. 2006년과 2010년에는 삼성을 떠나 제주지사 선거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