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포스코가 창립한 지 46년이 됐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과제를 신인규 기자와 짚어보겠습니다.



<기자>

포스코 창립 46주년(1일), 권오준 회장은 다른 기념행사 대신 국립현충원을 찾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국내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항제철 설립을 지시했습니다.



포스코 임원들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의 묘 앞에 선 권 회장은 자못 비장한 얼굴로 분향을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권오준 포스코 회장

"창립기념일을 맞아서 회사를 창립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신 두분을 찾아뵙고 각오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됐습니다."



이어서 권 회장이 찾은 곳은 박태준 명예회장의 묘소.



박태준 명예회장은 전문가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포항제철소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포스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권 회장이 창립기념일을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태준 명예회장의 묘를 참배한 것은 포스코 신화를 만든 인물의 리더십을 계승해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지속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자리에서 권 회장은 산업은행이 제안해 현재 실사가 진행중인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당진발전 인수 건이 재무구조 개선에 부담이 되면 인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정부의 의지라고 볼 수 있는 산업은행의 제안에도 흔들림 없이 원칙대로 가겠다는 겁니다.



<인터뷰> 권오준 포스코 회장

"그런 점이 걱정이 되요. 재무구조라는 측면하고 동부 인수라는 측면하고 잘 맞지 않는 측면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건지, 방안이 있는 건지 고민을 많이 해 봐야죠."



위대한 포스코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권오준 회장의 행보가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한국경제TV 신인규입니다.





<앵커>

포스코, 벌써 46주년이 됐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포스코는 사실 그 당시로서는 기적같은 일들로 이어진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철강 수요가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제철 기업이 생긴다는 것에 대해 국내외 반대가 굉장히 거셌습니다. 포항제철이 설립된 이후에도 그런 시각은 계속돼 왔었습니다. 76년 5월 31일 포항종합제철 제2기 확장준공식에서 있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육성을 들어보겠습니다.



<싱크>박정희 전 대통령

"국내외 전문가 또는 기술자 사이에서 아직까지 투자가 많이 소요되는 공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시기 상조다. 경제성이 희박하다 그러한 주장이 상당히 많았던 것입니다."



<앵커>

내용을 살펴봤을 때 당시 반대여론을 딛고 포항제철을 건설했고, 그러한 반대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기자>

네. 국내외의 부정적 시각으로 인해서 당시 해외 차관으로 포항제철을 설립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자 박태준 명예회장은 설립 자금을 대일 청구권, 그러니까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보상금을 통해서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농업용 지원자금이었던 이 대일청구권 자금을 공업용으로 돌리는 것부터, 임직원을 독려해서 영일만에 포항제철을 건설하기까지는 박태준 명예회장의 공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포스코에는 우향우 정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968년 7300만달러의 대일 청구권 자금을 포철 1기에 투입한 그해 겨울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박 명예회장이 “조상들의 혈세로 제철소를 짓는데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하고 영일만에 빠져 죽자”며 임직원들과 결의를 다지고, 결국 포항제철소 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을 기리는 말인데요. 요약하면 이런 인물들의 리더십이 지금의 포스코를 있게한 커다란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네. 어렵게 시작해서 현재 세계적인 기업이 된 포스코. 그 역사를 짚어보죠.



<기자>

1968년 4월 1일이 지금의 포스코가 시작된 날입니다.



포항종합제철 주식회사로 출발해서 73년 7월에 포항제철소 1기가 준공되고, 약 20년 뒤인 92년에는 광양제철소가 준공되면서 양대 제철소 체제가 완성됐습니다. 광양제철소 준공 이후 박태준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고요.



94년에는 뉴욕 증시에 상장했고, 2000년에는 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2002년 3월 15일 포스코로 사명을 변경했고요. 그동안 포스코가 남성적인, 강인한 이미지였다면 현재는 부드러운 모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CI라고 하죠. 포스코 엠블럼을 살펴봐도 각이 잡힌 부분 없이 곡선으로 모두 처리가 돼 있고요. 광고를 봐도 쇳물이 튀고 그런 모습 보다는 `소리없이 세상을 바꾼다`는 카피 아래 가족의 모습이 강조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2007년에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파이넥스 설비를 준공합니다. 기존 용광로 공법을 대체하는 친환경 공법으로 쇳물 제조원가를 15% 넘게 절감할 수 있고, 오염물질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친환경 공법입니다. 세계 철강사에 한 획을 그으며 포스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있게 해준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이 경영을 맡은 뒤 해외 자원개발 사업, M&A 확대 등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합니다. 2010년에는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하기도 했고요. 2013년 12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일관제철소가 가동됐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지금의 포스코, 어떤 과제를 안고 있습니까?



<기자>

포스코는 2007년 2분기에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기면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내 상장사 가운데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영업이익률은 21.5%를 기록했습니다. 현재는 수익성이 많이 낮아져 있습니다. 가장 최근 자료를 보면 지난해 4분기 포스코는 매출 16조 5천300억원에 영업이익 7천44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중국 업체의 영향으로 철강시장에서 공급이 과잉된 환경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수익성 개선과 함께, 포스코는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큰 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포스코가 사업분야를 넓히면서 부채 비율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해외 사업은 현재까지 투입된 돈에 비해 뚜렷한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새로 부임한 권오준 회장의 어깨가 무거운 것이 사실입니다. 권 회장은 기술력을 강화해 고부가가치 제품을 늘려서 수익성을 개선하고, 조직을 슬림화 해서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난 바 있습니다. 특히 재무구조 개선은 포스코가 펼쳐놓은 사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권 회장이 46주년 창립기념일에 다른 행사를 하는 대신 강력한 리더십으로 포스코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두 인물을 참배한 것도 그같은 리더십을 계승하겠다. 이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앵커>

네. 강력한 리더십으로 성장한 포스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리더십이 요구된다는 이야기인데요. 신인규 기자 수고했습니다.


신인규기자 ikshi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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