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美 '마냐나' 日 '좀비' 中 '자전거 경제'…한국은?
요즘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과 일본, 중국 경제가 갖고 있는 현안과 앞날에 대한 시각을 꼬집는 새로운 용어가 나타나 눈길을 끌고 있다. 물론 학술적으로 정의된 용어는 아니나 미국은 ‘마냐나 경제(manana economy)’ 일본은 ‘좀비 경제(zombie economy)’ 중국은 ‘자전거 경제(bicycle economy)’라 부른다.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추진 이후 경제 각료를 중심으로 미국 경제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인 ‘마냐나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마냐나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다. 내일은 언제나 태양만 뜬다는 식으로 경제 앞날을 의도적으로 밝게 보는 경제관을 ‘마냐나 경제론’이라 부른다. 미 증시에서는 이런 증세가 더 뚜렷하다. 주가수익비율(PER)이 24배로 거품이 터진 1996년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주식 비관론자들이 낙관론으로 돌아선 점 △채권은 거들떠보지 않는 점 △자금조달창구로 기업공개(IPO)에 몰리는 점 △개인이 레버리지 단타에 쏠리는 점이 그것이다.

경제관이나 증시에서 마냐나 증세가 나타나는 데에는 근거가 될 만한 실증적, 정책적 요인이 있다. 최근 3년간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富)의 효과’와 2010년 이후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고 추진해온 버락 오바마 정부의 경기대책이 갈수록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처럼 한 나라의 경제 성장에서 노동, 자본 등과 같은 생산요소보다 심리적 요소가 중시되는 시대에는 미 경제 각료들이 의도적으로 미래를 밝게 봄으로써 경제주체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숨은 의도가 엿보인다. 올해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겨냥한 정치적인 목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낙관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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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테이퍼링에 이어 금리인상 시사 발언까지 나올 만큼 성급한 출구전략에 대해 ‘제2의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증시에서도 조만간 주가가 폭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본 경제 앞날에 대해서는 안팎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대조적이다. 2012년 12월부터 아베노믹스를 추진해 경기 회복을 학수고대해 온 아베 정부의 경제 각료들은 올해가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날 수 있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다. 엔저도 ‘J-커브 효과’를 들어 조만간 수출과 무역수지가 개선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일본 경제가 또다시 ‘좀비 국면’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좀비란 기업에서 일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시체와 같은 조직원을 의미한다. 앞으로 아베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수용층인 국민과 기업인의 반응이 종전만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아베 정부에 대한 국민 지지도는 50% 밑으로 떨어졌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무역수지 개선과 이를 통한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일본 무역 구조의 전제인 ‘마샬-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1)’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엔저에 따라 수출단가가 떨어지면 수출물량이 더 늘어나야 수출금액이 증가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고 있다.

중국 경제의 앞날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밝게 예측돼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임금, 금리, 세금, 땅값 등 생산과 경쟁력에 직결되는 ‘성장통’에다 부동산 거품, 그림자 금융, 중국판 키코라 불리는 위안화 환율파생상품(TRF) 부실 우려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 정부는 ‘자전거 경제’를 지향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밟아야 쓰러지지 않듯이 중국 경제가 현 시점에서 성장이 멈추면 이런 문제점이 노출되면서 우려해 왔던 ‘경착륙’과 ‘중진국 함정’에 동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어떤가. 한마디로 마냐나, 좀비, 자전거 경제의 특성을 동시에 안고 있다. 우리 경제 각료들이 올해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은 낙관적이다. 성장률은 4%에 근접하고 실업률은 3% 내외로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대로 오르지만 ‘D’공포(디스인플레이션)를 잠재울 수 있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국민의 체감경기는 사뭇 다르다.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현 정부와 경제 각료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우리 경제를 놓고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어떻게 부를지 자못 궁금하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