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영업의 기초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이거든요. 내게 완전히 마음을 열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이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면, 그 사람의 옆 사람, 뒷 사람, 이런 식으로 제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납니다.”

“도전도 열정도 일종의 습관입니다. ‘일단 해보자’며 자꾸 부딪쳐야 합니다. 그래야 깨지고 실패하는 데 내성이 생기고 다시 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기지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도전이 습관이 됩니다. 열정이 있으면 도전이 버겁지 않습니다.”

최현만 미래에셋생명 수석부회장(53)은 깔끔한 첫인상으로 사람을 끌어당긴다.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을 정도다. 팽팽한 피부와 말끔하게 빗어 넘긴 헤어 스타일이 영락없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면모다. 성공이라는 단어에 원래부터 가까웠던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런 선입견은 그의 인생 절반을 채운 실패와 좌절, 그리고 깊게 파인 손등의 주름을 보지 못한 오해다. 최 부회장은 ‘입지전적’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스토리를 가졌다. 20년 가까운 단골집인 서울 내자동에 있는 남도 토속음식 전문점 ‘신안촌’에서 그는 이를 악물고 내달렸던 ‘청년 최현만’에 대한 얘기를 풀어냈다.

열정과 오기로 똘똘 뭉친 시골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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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회장은 전남 강진 시골에서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마흔둘에 그를 낳았다. 그는 “젊은 모습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예순 중반을 훌쩍 넘긴 신안촌 여사장에게서 예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더 자주 찾는단다.

시골 농부였던 아버지는 한눈팔지 않고 농사를 지었다. 8남매가 굶지는 않았지만 넉넉하지도 않았다. 가정 형편을 감안해 아버지는 그가 공고로 진학하기를 바랐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대학은 가야지’라며 반대한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할 뻔했다.

청소년기는 힘들고 고생한 기억만 남아 있다고 했다. “그리 존재감도 없고 병약했어요. 광주에서 유학한 고교 시절까지 비실대기만 했어요. 태권도를 하다 다쳤는데, 그걸 모르고 방치했더니 속으로 곪아 눈에 띄게 허덕거렸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했을 리가 있겠어요.”

몸이 상한 걸 뒤늦게 알고 5개월을 휴학하며 회복했지만 복학 후에도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몸을 혹사하면 다시 병이 날 것이라는 걱정이 컸기 때문이다. 사춘기까지 겹쳐 종교인의 길을 생각하기도 했다.

결국 입시에 실패해 서울에서 재수했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낙담하다 장학금을 제의한 전남대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지만 불만스러운 현실에 방향을 잡지 못하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다. 졸업까지 10년이 걸렸다.

뭔가 ‘인생 한 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았다. 늦은 출발을 역전시키고 빨리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행정고시를 선택했다. 무등산에 들어가 3년 넘게 매달렸지만 낙방의 쓴잔을 마셨다.

포기할 만도 했지만 그는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행시 1차에 붙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하자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걸 뒤돌아보며 후회하기보다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자고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학과 공부에 집중했다. A+가 찍힌 성적표가 수두룩하게 쌓여 갔고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았다. “돌아보면 버틸 수 있는 오기가 어디서 나왔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도 꺾이지 않은 경험이 뭐든 못하겠느냐는 근성으로 자리잡은 것 같아요. ‘일단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예요.”

“차별화 가능한 것은 모두 시도해라”

대학 졸업 무렵 진로를 증권사로 정했다. 당시 교제 중이던 지금의 아내 때문이었다. 치대생이던 아내와 격을 맞추려면 ‘증권맨’ 정도는 돼야 한다는 오기였다. 1980년대 후반 당시는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증권사로 몰려들던 시기다.

학벌 나이 집안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던 그는 입사추천서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방법을 찾던 끝에 추천서가 도착한 상대 등을 돌아다니며 간신히 지원서를 얻어 면접 기회를 잡았다.

면접관들은 싸늘했다. 최 부회장 스스로도 자신감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간절했다. ‘안 뽑으면 후회할 것’이라며 당당하게 임했다. “그 배짱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면접 후 기대를 접고 있었는데 합격 소식이 날아오더라고요. 또 느꼈습니다. 기회도 쟁취하는 겁니다.”

그렇게 입사한 곳이 한신증권(현재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이다. 서울 누나 집에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며 시작한 여의도 생활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상사가 명문대 출신 동기들에 비해 표나게 차별하는 게 보이더군요. 일을 안 주는 거예요.”

젊은 혈기에 발끈하며 상사에게 대들기도 했던 그는 전략을 바꿨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으로 차별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당시 매일 영업실적을 결산하는 일을 하던 그는 부서별 실적을 B4 용지 한 장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일일 영업 속보’를 만들었다. 주간, 월간 누계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집계했다. 이렇게 만든 일지를 매일 수십부 복사해 사장실을 포함해 전 부서에 신문 배달하듯 돌렸다.

지점으로 나가 영업을 시작하고는 ‘한신 중앙 전망대’라는 데일리 자료를 만들었다. 새벽 5시에 출근해 여의도 전 증권사의 일간 리포트 핵심 내용만을 모은 것이다. 그렇게 만든 보고서를 을지로 일대 금융사와 건설사를 방문해 전달했다. 하루도 빠짐 없이 ‘출근 도장’을 찍자 처음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를 찾았다. “한 명씩 거래를 트고 영업 반경을 넓혀가니 어느새 꼴찌에서 상위 1% 영업사원이 돼 있더라고요.”

영업의 기초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결국 사람이거든요. 영업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을 잡는 일이에요.”

그렇게 이름을 알려가던 그를 눈여겨본 사람이 바로 같은 증권사 몇 년 선배였던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었다. 박 회장은 학연·지연이 거의 없던 최 부회장을 패기와 열정, 성실함만 보고 훗날 창업 멤버로 영입했다.

“인생 ‘한방’은 없다. 잔펀치를 쌓아라”

듣다 보니 그의 얘기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열정이다. 소주 반 병도 버겁던 그를 ‘술고래’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열정 덕분이다. 죽기 살기로 주량을 늘리기도 했지만, 적게 먹으면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노하우도 남다른 노력으로 개발했다고 그는 귀띔했다. “뭐든 하고자 하는 게 열정이에요.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듯 막막해도 열정이 있으면 방법이 생깁니다.”

미래에셋증권을 이끌던 2005년에는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 서울 강남 교차로에서 트럭과 승용차에 잇따라 치여 의식을 잃었다. 의사는 ‘생명을 건진 게 기적’이라며 최소 3개월은 꼼짝 않고 쉬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 부회장은 사고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1주일 만에 출근했다. 회사를 한시라도 비우기 어렵다는 지독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일이나 사람이나 전부 마찬가지예요. 끝장을 보고 내게 완전히 마음을 열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면, 그 사람의 옆사람, 뒷사람, 이런 식으로 제 편이 빠르게 늘어납니다.”

세 접시째 들어온 홍어가 또다시 바닥을 보이고 자리를 끝낼 무렵 인생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저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한 방’을 날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 보니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한 방보다는 잔펀치라는 생각이 드네요. 실패하더라도 쉬지 않고 두드려야 합니다. ‘내가 주인공이다’라는 생각이 에너지를 만들어 줍니다. 저는 사원 때도, 과장 때도, 부회장인 지금까지도 그 마음가짐에 변화가 없습니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현만 수석부회장 "인생 한방은 없다…잽 날리다 보면 챔피언 되는 것"

최현만 부회장의 단골집 '신안촌'
故 김대중 前 대통령 즐겨 찾아…무안 직송 낙지꾸리 별미

[한경과 맛있는 만남] 최현만 수석부회장 "인생 한방은 없다…잽 날리다 보면 챔피언 되는 것"
30년 전통의 남도 토속음식 전문점. 1986년 서울 내자동에 문을 열었다. 홍어를 좋아한 전남 신안군 출신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즐겨 찾던 집이다. 무안에서 직송한 참낙지로 만든 낙지꾸리가 대표 메뉴다. 산낙지에 양념과 참기름을 발라 대나무 꼬챙이에 끼워 구워내 담백하고 개운하다. 삭힌 홍어와 돼지 편육을 묵은 김치에 싸 먹는 홍어삼합과 해장에 좋은 매생이탕도 인기 메뉴다. 물 맑고 청정한 개펄에서 자라는 매생이는 추운 겨울에만 잠깐 나오지만, 신안촌에서는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 통풍이 잘되고 저온이 유지되는 저장창고에 1년 치를 비축해 두는 덕분이다. 낙지꾸리 5만5000원, 산낙지 4만5000원, 홍어삼합 7만7000원, 매생이탕 1만4000원 등이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다. (02)725-7744

■ 최현만 수석부회장

▶1961년 전남 강진 출생 ▶1990년 전남대 정외과 졸업 ▶1996년 동원증권 서초지점장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 ▶2007년 미래에셋증권 대표이사 부회장 ▶2012년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 수석부회장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