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前 기재부 장관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지엽말단에 매달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공공개혁과 창조경제에 대해 “한계가 분명한 지엽말단의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전 장관은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반도선진화재단 신임 이사장 취임식에서 “관병(官兵·중앙정부)은 허약하고, 향병(鄕兵·지방정부)은 탐욕스러워 나라의 장래를 맡길 수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이날 취임식을 마친 뒤 기자와 만나 “보다 큰 시각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임사에서 ‘의병론’을 제기했는데.

“한국은 선진국 진입을 위한 깔딱고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장잠재력 추락과 복지부담 증가 등으로 위기국면을 맞고 있는데 돌파구는 좀처럼 제시되지 않고 있다. 민간 전문가의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

▷그 정도로 위기인가.

“정치권·정부의 인기영합주의와 지역·이익집단의 이기주의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기술적 파산’에 그쳤지만, 이대로 가다간 ‘원천적 파산’을 맞을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혁신 3개년 계획으로 부족한가.

“방향 설정은 맞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공공개혁만 하더라도 민영화를 죄악시하고, 개방과 경쟁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선을 그어놓고 그 안에서만 머물러 있다. 근본적 문제를 묻어두고 ‘복지가 과다하다’는 식의 지엽말단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창조경제는 어떻게 평가하나.

“큰 틀을 뒤엎지 않고 고작 정보통신기술(ICT) 융합과 확산에만 매달리고 있다. 발상의 빈곤이다. 미래창조과학부 혼자 성과를 낼 수 없는 난제들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얘긴가.

“창조경제라는 큰 콘셉트에 맞는 큰 필라(기둥)를 세우고 역점과제를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금 고등교육시스템은 아예 판갈이를 해야 할 상황이다. 영국 옥스퍼드나 미국 MIT의 대학 강의 혁신사례를 봐라. 한국의 전통적 고등교육시스템은 곧 붕괴될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대학 육성 등 엇박자를 내고 있다.”

▷규제개혁에 대해서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민간의 창의와 활력을 복돋우기 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방향은 맞다. 하지만 지난해 규제 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역설적이지 않나.”

▷고용률 70%는 달성 가능한가.

“숙제가 쌓여가는데 해결을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 연착륙, 정년연장, 근로시간단축, 고용유연성 제고 등 현안을 풀지 못하면 잠재성장률 4%나 고용률 70%는 헛구호에 그칠 것이다.”

▷통일에 대비한 대통령 직속위원회 설치는 어떻게 보나.

“취지는 좋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직속위원회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국민통합, 청년, 문화융성 위원회 등이 단적인 예다. 위원회는 각 부처가 일상적 업무에 매몰돼 추진을 못하고 있는 대통령의 아젠다를 맡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혀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인사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이 지나친 것 아닌가.(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기재부 장관을 지냈다)

“편가르기 시각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전 정부와 차별화할 의도도 없다. 정부가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성공할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의병이 잘 싸우면 관병도 힘을 받는다.”

▷지방선거가 곧 다가온다.

“자리에 오르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무슨 일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에는 불퇴전의 각오로 경고음을 내겠다.”

▷재단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한반도선진화재단은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6년 9월 설립한 보수개혁 성향의 민간 싱크탱크다)


“재단이 목표로 한 미국의 브루킹스나 헤리티지가 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제2의 창업이나 뼈를 깎는 경장(更長)을 해야 한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