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이근 서울대 교수, 문 장관,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백수경 인제대 백병원 부이사장.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회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기웅 한국경제신문 사장, 이근 서울대 교수, 문 장관,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백수경 인제대 백병원 부이사장.
“저출산을 여성의 문제로만 여겨선 안 됩니다. 일하는 여성의 육아 공백을 메워주지 못하는 한국 남성들의 문제도 상당히 큽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26일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에 참석해 이렇게 강조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성에게만 가사·육아 부담을 지우는 문화부터 확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다. 문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들어 남성들의 가사 참여 시간과 출산율이 정비례한다고 설명했다. “남성이 1주일에 2시간 이상 가사를 돌보는 스웨덴은 출산율이 2.0명에 육박하지만, 30분밖에 하지 않는 일본은 1.4명, 20분인 한국은 1.18명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시각 아래에서 한국의 사회·문화·노동시장을 바꿀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경 밀레니엄포럼-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에서 기금운용본부 분리, 필요하다면 법제화 추진"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1인당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노인인력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문 장관=노인은 물론 여성이 계속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가장 좋은 고령화 해법이라고 생각한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정치권에서 벌이는 기초연금 논란 때문에 많은 국민이 혼란스러워한다.

▷문 장관=우선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까지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것엔 여야가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다. 일각에선 수급 기준을 하위 80%까지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오곤 있지만 만약 그렇게 되면 월 소득인정액 기준이 87만원에서 210만원으로 확 올라간다. 정말 그 수준까지 올릴 필요가 있을지에 대해선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최근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하위 70%에 주는 급여를 국민연금과 연계해 차등화할 것인가, 아니면 모두에게 20만원을 지급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후세대의 부담을 고려한다면 모두에게 20만원을 주는 건 포퓰리즘이라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이근 서울대 교수=복지와 성장의 선순환이 가능하려면.

▷문 장관=어려운 질문이다. 다만 최근 사회보장위원회에서 복지지출에 따른 재정 부담을 추계한 내용이 있다. 지난해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9.8%였다. 2060년이면 29%로 지금보다 세 배 늘어난다. 복지지출은 늘어나는데 일하는 사람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1인당 세부담 문제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증가하는 복지지출을 통제하는 법도 고민해야 할 때다.

▷이 교수=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원칙은 무엇인가. 기금운용체제의 지배구조 개선 여지는 없나.

▷문 장관=400조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재무적 투자자다. 주식가치를 보전하자는 것이고 그 이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현재 기금운용체제는 상당히 허술한 게 사실이다. 연금사회주의 문제도 우려된다. 캐나다연금(CPP) 등의 사례를 참고해 지배구조를 개선해나가겠다.

▷현정택 인하대 교수=금융생태계 발전을 위해선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에서 완전히 독립시켜야 한다.

▷문 장관=금융계에서 국민연금을 ‘연못 속의 고래’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금운용본부를 국민연금에서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찬반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공론의 장을 만들겠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지, 경쟁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겠다. 필요하다면 법 개정 추진도 고려하겠다.

▷백수경 인제대 백병원 부이사장=시장경제에 역행하는 저수가 중심의 의료비 책정방식이 한국 의료계를 망치고 있다.

▷문 장관=보건·의료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공성이지만 시장경제 원칙 또한 존중돼야 한다. 의료부문의 공공성과 산업적인 측면이 꼭 충돌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호보완적이 될 수 있다. 선택진료제 개편도 시장경제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진료 자체를 없애겠다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선택진료 의사 비율을 30% 수준으로 낮추고, 실력 있는 명의는 인적 가치를 인정해 수가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최근 건강보험 흑자는 병원과 제약회사를 쥐어짠 결과란 주장에 동의하나.

▷문 장관=건강보험 재정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3조6000억원 흑자를 냈고 누적 적립금도 8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가 병원과 제약회사를 쥐어짠 결과는 아니다. 건강보험 흑자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 악화다. 지난해 환자들의 병원 방문횟수가 예년의 절반 정도까지 떨어졌다. 정부가 약값을 내린 것은 부수적 요인이다. 다만 의료수가 조정이 필요하다는 부분은 정부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의료계와 논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고 수가체계를 조정해나갈 계획이다.

▷문정숙 숙명여대 교수=감기약 슈퍼판매 논란에서 볼 수 있듯 복지부가 소비자 편을 들기보다는 힘 있는 이익집단 편을 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문 장관=앞으로 이해집단과의 갈등이 생긴다면 꼭 국민 편에 서겠다고 말씀드리겠다.

▷오종남 서울대 교수=해외 의료기관의 국내 진출이 어렵다. 글로벌 제약회사의 신약도 한국에선 제대로 된 가격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문 장관=한국 의료기관이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 있듯이 한국시장도 해외 의료기관에 개방돼야 한다. 최소한 경제자유구역 내에서 영리성 해외법인의 국내 진출은 적극적으로 권장돼야 한다. 글로벌 신약의 약가 문제도 중요하게 보고 있다. 한국 제약회사들은 오리지널 신약보다는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수익구조를 형성해왔다. 때문에 제네릭 가격은 높게 책정된 반면 신약 가격은 잘 인정해주지 않았다. 전체적인 약가 체계를 다시 살피고 글로벌 신약의 혁신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

정리=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