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기다린 만남…치매·노환에 가족 기억 못 하기도

공동취재단·김정은 기자 = 두 살배기였던 딸이 백발이 성성한 60대 노인이 돼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 앞에 섰다.

아버지는 평생을 미안해하고 그리워하던 딸을 앞에 두고 밀려드는 회한에 말을 잇지 못했다.

3년4개월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20일 오후 금강산호텔. 전쟁통에 헤어진 부모와 자식이 60여 년 만에 재회했다.

손기호(91) 할아버지는 딸 인복(61)씨와 외손자 우창기(41)씨를 만났다.

손 할아버지는 딸을 눈앞에 두고 말을 잇지 못한채 눈물만 흘렸다.

인복 씨는 "아버지, 못난이 딸을 찾아오셔서 고마워요!"라며 울면서 아버지를 껴안았다.

손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부모님과 아내를 데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딸은 외할아버지에게 맡기고 다음에 데려올 계획이었지만 경비가 강화되면서 북쪽으로 다시 올라가지 못했다.

당시 딸은 두 살이었다.

손 할아버지는 "헤어질 때 마루까지 나와 손을 흔들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라며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박운형(93) 할아버지도 북한에 두고온 딸 명옥(68)씨와 동생 복운(75·여)·운화(79)씨를 만났다.

박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혼자 직장생활을 하다 1·4 후퇴 때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석 달이면 돌아갈 수 있겠지 하던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기게 됐다.

명옥 씨는 박 할아버지가 25살 되던 해 해방둥이로 낳은 딸이다.

헤어질 때 예닐곱살 소녀였던 딸은 이제 67살 할머니가 돼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박 할아버지는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다"라며 "두 세상을 사는 기분"이라고 감격스러워 했다.

그는 딸과 동생들에게 "통일이 될 때까지 건강하게 죽지 말고 살아서 다시 만나자"라며 또 한 번의 기약없는 이별을 미리 준비했다.

강능환(93) 할아버지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들 정국(64)씨와 처음으로 만났다.

결혼한 지 4개월도 안 된 아내와 1·4 후퇴 때 헤어진 강 할아버지는 아들의 존재조차 모른 채 60여 년을 살았다.

그러다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돼 생사확인을 거치면서 북한에 남긴 아내의 뱃속에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하지만 상봉장에 마주선 아들과 아버지는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부자였다.

강 할아버지는 "한번 안아보자"라며 아들에게 다가갔다.

둘은 얼싸안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강 할아버지와 동행한 남쪽의 또 다른 아들은 이북의 형에게 "형님, 반갑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남쪽 아들은 북쪽 아들보다 키가 10cm는 더 컸고 덩치가 훨씬 좋았다.

하지만 두 형제는 서로 운동을 좋아한다며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60년이라는 시간은 그토록 그리던 가족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울 만큼 긴 것이었다.

몇몇 이산가족들은 치매 등 노환으로 가족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김영환(90) 할아버지는 북녘에 두고 온 아내 김명옥(87) 씨와 아들 대성(65) 씨를 만났다.

이번 상봉단 82명 가운데 배우자를 만난 것은 김 할아버지가 유일하다.

김 할아버지는 6·25 때 인민군을 피해 혼자 남쪽으로 잠시 내려와 있다가 가족과 헤어졌다.

당시 아들 대성 씨는 5살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이후 남쪽에서 결혼해 4남1녀를 뒀다.

김 할아버지와 이번 상봉에 동행한 아들 세진(57) 씨는 "아버지는 북쪽 가족들에게 젊을 때 그렇게 헤어졌다는 미안함을 안고 살았다"라며 "가족들을 만나면 보고싶고 안아주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할아버지는 연로한 탓인지 아내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세진 씨는 "너무 오래돼서 약간 못 알아보신다"라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추스렸다.

이영실(88) 할머니는 딸 동명숙(67) 씨와 동생 정실(85·여)씨를 만났다.

그러나 치매를 앓고 있는 이 할머니는 딸과 동생을 모두 알아보지 못했다.

이 할머니는 전쟁통에 두 딸을 시부모에게 맡기고 남편과 잠시 남한으로 피난왔다가 휴전이 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두 딸 중 맏이는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명숙 씨는 이 할머니가 자신과 이모를 알아보지 못하자 "엄마, 이모야, 이모, 엄마 동생"이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이 할머니의 계속 손을 잡고 귀엣말을 하며 어머니 곁을 떠나지 못했다.

정실 씨도 탄식과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이 할머니와 동행한 딸 동성숙씨는 어머니를 대신해 이모와 혈육의 정을 나눴다.

성숙씨는 "엄마가 오실 수 있을지 몰랐는데 엄마가 꼭 나와야 한다고 해서 왔다"라며 흐릿한 정신에도 북녘 가족을 만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던 이 할머니의 마음을 전했다.

이 할머니는 평생을 북한에 두고온 딸들 생각에 명절 때면 몰래 숨어 울곤 했고, 이 할머니의 남편은 내내 애통해하다 4년 전 세상을 떴다.

이번 1차 상봉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모두 11명이 북한에 있는 자녀와 만났다.

(금강산=연합뉴스) k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