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황제 >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 안현수(오른쪽·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5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두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실격당한 한국 대표 신다운(왼쪽)은 고개를 떨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돌아온 황제 > 러시아 쇼트트랙 대표 안현수(오른쪽·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15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두팔을 번쩍 들며 기뻐하고 있다. 실격당한 한국 대표 신다운(왼쪽)은 고개를 떨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대했던 금메달은 나오지 않았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차세대 여왕’ 심석희(17·세화여고·사진)의 은메달에 기뻐하면서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9·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8년 만에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1500m, 5000m 계주, 1000m 등 세 종목에서 안현수를 따라잡지 못하거나 실격을 당하면서 ‘노메달’의 위기에 처했다.

○심석희, 아쉬운 2위…2종목 남아

한국 선수단은 쇼트트랙 여자 1500m와 남자 1000m 경기가 열린 15일(한국시간)을 ‘골든데이’로 예상했지만 멀티 메달을 향한 기대는 아쉬움으로 바뀌었다. 여자 1500m 세계랭킹 1위 심석희는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손꼽혔지만 노련한 중국 선수에게 역전을 허용하며 아쉬움을 곱씹어야 했다. 심석희는 이날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열린 쇼트트랙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19초239를 기록,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이 종목 금메달리스트 저우양(중국·2분19초140)에 이어 2위로 레이스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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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가 첫 올림픽 무대에서 은메달을 따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하지만 레이스 초중반부터 선두를 유지하다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저우양에게 인사이드 돌파를 허용한 것은 뼈아팠다. 경기 직후 밝게 웃지 못했던 심석희는 “처음에는 무척 아쉬워 기쁨을 표현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만족하지만 마지막에 추월당해 아쉽다”고 했다. 이내 웃음을 되찾은 심석희는 “지금은 메달을 딴 것에 만족한다”며 “제겐 값진 메달”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올림픽 첫 메달의 물꼬를 튼 심석희는 남은 두 종목에서 금메달에 다시 도전한다. 18일 여자 3000m 결선과 22일 여자 1000m 결선에 출전한다.

○남자 대표팀 노메달 위기

이어 열린 남자 1000m에서는 아쉬운 탄식이 이어졌다. 남자 대표팀의 주력 종목인 1000m에서 신다운(21·서울시청)이 결승에 올랐지만 안현수 등 2명이 팀 플레이를 펼친 러시아의 벽을 넘지 못했다. 4위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추월할 때 다른 선수를 밀어냈다는 점 때문에 실격 판정을 당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1500m에선 이한빈(26·성남시청)이 6위에 그쳤고 5000m 계주에선 결승에도 오르지 못해 이제 가장 취약한 종목인 500m(22일) 한 종목만 남았다. 12년 만에 노메달의 위기에 처했다.

한국 선수단은 안현수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1분25초325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 금메달을 목에 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세계 정상으로 성장했지만 국내 빙상계 파벌 싸움에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는 8년 만에 ‘쇼트트랙 황제’로 부활했다.

안현수는 러시아 쇼트트랙 사상 첫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무릎을 꿇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러시아 국기를 들고 빙판을 누볐다. 남자 쇼트트랙 선수 가운데 최다인 통산 금메달 4개를 획득한 안현수는 2개의 국적으로 각각 금메달을 딴 최초의 선수로 기록됐다.

○안현수 “러 국적 선택 틀리지 않아”

경기를 마친 안현수는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최대한 좋은 환경을 찾아 러시아로 왔다”며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첫 메달(500m 동메달)을 따고 나서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며 “8년 동안 이 순간을 바라봤고, 금메달을 따고 기쁨을 누려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전성기 기량을 회복한 안현수는 “한국과는 다른 ‘맞춤형’ 관리와 훈련을 받았다”며 “큰 부상을 한 번 당하고서 무릎 통증이 있는데 러시아에서는 그 상태에 맞춰 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현수가 금메달을 획득한 뒤 대한빙상경기연맹 홈페이지는 안현수의 귀화와 관련해 항의글을 남기려는 네티즌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됐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