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수영 스피드스케이팅 등 기록 경기는 전통적으로 동양인 약세 종목이다. 체급 경기가 아니다 보니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동양인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그러나 이런 속설도 속속 깨지고 있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그렇고 올림픽 2연패의 이상화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한국인 최초로 이런 벽을 허문 사람은 사실 따로 있다. 바로 이규혁이다. 이번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500m 18위, 1000m 21위라는 평범한 기록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대표팀 맏형이 그 주인공이다. 이규혁은 1997년 캘거리 월드컵 1000m에서 1분10초42로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2001년에도 1500m에서 1분45초20으로 또다시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기록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은 어떻게 보면 올림픽 금메달 이상이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동양인으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일본 데라다 노보루 1500m) 이후 72년 만이었다. 그런 박태환도 세계 신기록은 작성한 적이 없다. 이규혁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건 시작일 뿐이었다. 그는 세계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2007~2008, 2010~2011년 등 4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를 4번 이상 우승한 선수는 이규혁을 포함, 단 네 명뿐이다. 2009년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5년 연속 우승이라는 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 국제 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통산 14차례 정상에 올랐다. 명실상부한 금세기 최고의 스프린터다. 이번 소치 올림픽 남자 500m 금메달리스트 미헐 뮐더르(네덜란드)가 올림픽 공식 프로필에서 자신의 ‘영웅’으로 이규혁을 꼽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런 이규혁도 ‘올림픽 노메달’의 징크스는 이번에도 결국 깨지 못했다. 36세라는 나이도 버거웠을 것이다. 13세에 국가대표가 돼 20년간 대표를 지내며 6차례 올림픽에 출전한 영웅은 그렇게 이제 스케이트를 벗을 모양이다.

“메달이 없어 계속 도전한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올림픽은 선수를 계속하고 싶어 내세운 핑계였던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경기 직전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도전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라는 4년 전 밴쿠버 올림픽 때의 말도 오버랩된다. 스케이팅 실력 못지 않은 그의 진솔한 언어가 심금을 울린다. 이규혁 파이팅!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