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씨(49)가 처음 컴퓨터를 구입한 것은 대학 4학년 때인 1989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80만원으로 용산에서 ‘8088 CPU(중앙처리장치) 탑재’ 조립 컴퓨터를 구입했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57만원 하던 시절이었다.

컴퓨터는 그의 학업과 취미생활을 충족시키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문제는 소음이었다. 밤새 프로그램을 돌려야 하는데 컴퓨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히느라 CPU쿨러가 돌아가면서 내는 소음이 이씨의 잠을 방해했다. 그는 “저 소리만큼은 어떻게든 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로부터 25년. 이씨는 방열기술(전자·전기기기에서 발생하는 열을 밖으로 빼내는 기술)로 세계 조명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엔지니어가 됐다. 그가 2010년 지인과 함께 설립한 아이스파이프는 지난해부터 국내외 각종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전시회에서 상을 휩쓸고 있다.

필립스 오스람 GE 등 세계 조명업계 ‘빅3’뿐 아니라 국내 대기업 계열 조명회사도 방열기술을 매각하라거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LED 전등 방열기술 ‘세계 최고’

LED 조명의 핵심 기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가 에너지효율이 높은 LED 칩을 생산하는 기술이고, 둘째는 크기가 작은 고성능 전원공급장치를 만드는 기술이다. 마지막이 방열기술과 외장 케이스를 만드는 기술이다.

아이스파이프의 강점은 ‘방열기술’에 있다. 조명업체들은 고출력 조명등을 만드는 데 애를 먹었다. 좋은 LED 칩과 전원장치는 있지만 LED 칩에서 나오는 열을 빨리 식힐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다. 열을 빨리 식히지 못하면 LED 칩의 수명이 오래가지 못해 제품 내구성과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상철 아이스파이프 부사장은 2000년대 중반 LED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세계 조명등 시장의 흐름이 형광등과 메탈등에서 LED 전등으로 바뀌는 흐름을 봤고, 그 관건이 방열 기술에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는 이미 전 직장에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저소음, 고효율 ‘꽃잎형 CPU쿨러’를 개발해 히트를 쳤다.

○가격과 품질서 월등한 경쟁력

그는 회사를 나와 개발팀을 이끌고 4년간 ‘동파이프식 방열기술’에 매달렸다. 기존 LED 조명의 방열기는 알루미늄에 홈을 파는 방식이었다. 무겁고 부피가 컸다. 그는 지름 1.6㎜의 가는 동파이프에 유체를 넣어 이를 둥그렇게 원통형으로 세워 연결하는 방열기를 개발했다. 더 빠르게 열을 식히고, 전등을 가볍고 작게 만들 수 있는 기술이다. 회사 이름은 기술의 특징을 따서 ‘아이스파이프’(얼음처럼 빨리 열을 식히는 기술)로 지었다.

이 기술로 지난해 10월 처음 내놓은 제품이 ‘CR2000’이다. 이 제품은 대당 17만원으로 다른 150W LED 전등의 절반 수준이면서 무게와 부피는 각각 4분의 1이다.

○가정용 제품까지 라인업 확대

이 부사장은 “아이스파이프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이처럼 싸고 가볍고 성능이 좋은 고출력 LED 전등을 만들 수 없다”며 “이에 관한 46가지의 특허를 갖고 있어 당분간 세계 어느 회사도 이에 대적할 만한 제품을 내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는 영업·마케팅 등 대외활동은 이석호 사장에게 맡기고 자신은 기술개발에만 전념하고 있다. 아이스파이프의 지난해 매출은 56억원. 올해 최소 200억원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연내 가정용 제품까지 보강해 4~1000W에 이르는 풀라인 생산체제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 으뜸상 후보 접수합니다

중소기업청과 한국경제신문은 기술력 있는 초기 중소기업의 마케팅 지원을 위해 매달 4개의 ‘으뜸중소기업제품’을 선정합니다. 제품 선정에는 김문겸 중소기업옴부즈만을 포함한 기업, 학계, 연구계 전문가 10명이 참여합니다. 한국경제신문 인터넷 홈페이지(event.hankyung.com)를 참조해 이메일(art@hankyung.com)로 응모할 수 있습니다.

1월의 으뜸중기제품에는 △아이스파이프의 CR2000(고출력LED전등) △임진에스티의 세이퍼락(풀림방지너트) △제이디사운드의 몬스터GODJ(휴대용 DJ기기) △디포인덕션의 인덕션 튀김기(요리기기)가 선정됐습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