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담동에 사는 한모씨(62)는 지난주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센터를 찾았다. 오는 5월 금융소득 종합과세 신고를 앞두고 절세 방안을 찾기 위해서다. 상담 후 그는 배우자와 자녀에게 비과세 한도인 6억원과 3000만원을 각각 증여하기로 결정했다. 한씨는 “증여를 통해 연간 약 6000만원의 금융소득에서 발생하는 세금 1850만원이 1400만원으로 줄어든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강남 부자들은 요즘 財테크보다 '稅테크'
강남권 부유층 사이에선 요즘 절세가 최대 화두다. 부자 고객을 상대하는 PB센터마다 상품 추천보다 소득 분산이나 자산 배분을 통한 ‘세테크’ 상담이 주요 업무가 됐다.

부유층이 세금에 주목하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 들어 과세가 대폭 강화돼서다. 우선 5월엔 종전보다 두 배 강화된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에 따라 소득세를 신고해야 한다. 최고 41.8%를 부담해야 하는 종합과세 기준은 작년 2000만원으로 하향 조정돼 올해 신고분부터 적용된다. 소득세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기준도 종전 3억원에서 올해부터는 1억5000만원으로 낮아졌다.

김기홍 한화생명 강남FA센터장은 “종합소득세 신고일이 다가오면서 PB 고객들이 수익을 좀 더 내기보다는 세금을 덜 내는 방법을 더 궁금해한다”며 “주식 부동산 등 투자상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박정국 외환은행 세무사는 “가족에게 큰돈을 증여할 때는 연초에 하는 게 연간 단위로 계산하는 금융소득을 분산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비과세와 분리과세 상품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이들 상품에서 발생한 소득은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비과세 상품은 월납 방식의 장기 저축성보험과 국내 주식형펀드, 상호금융 출자금과 예탁금, 생계형저축 등이 있다. 물가 상승에 따라 원금이 증가하는 물가연동국채와 선박·유전펀드 등은 분리과세가 가능하다.

성열기 삼성생명 패밀리오피스센터장은 “장기 저축성보험의 경우 6개월마다 선납 형태로 거액을 넣는 자산가가 꽤 있다”며 “다만 유전펀드 하이일드펀드 같은 분리과세 상품은 1인당 가입 한도가 낮은 데다 투자 위험도 작지 않기 때문에 적극 추천하지는 않고 있다”고 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계속되면서 투자수익 기대치를 낮추려는 추세도 뚜렷하다.

양수경 신한PWM이촌동센터 팀장은 “1~2년 전만 해도 주식형 상품과 같은 위험자산에 투자할 때 최소 연 7~8%를 원했는데 지금은 목표수익률이 5~6% 선까지 떨어졌다”며 “고객들이 철저하게 위험을 분산하면서 자산배분형 포트폴리오를 짜려는 것도 이전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했다.

요즘은 투자상품을 고를 때 중위험·중수익 상품만 찾는다는 게 일선 PB들의 전언이다. 대표적인 게 롱쇼트(저평가된 주식 현물을 사고 고평가된 주식 선물을 팔아 절대 수익을 추구하는 운용 전략)형 헤지펀드다. 1인당 5억원 이상만 투자할 수 있는 한국형 헤지펀드는 2011년 말 출범한 지 2년여 만에 2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다.

김인응 우리은행 투체어스 잠실센터장은 “상당수 고객이 올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이려고 현금을 준비했다가 연초부터 국내외 증시가 흔들리는 모습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안전자산과 투자상품 비중을 6 대 4 정도로 짜놓되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상품 비중을 조금씩 늘리도록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형일 하나은행 PB본부장은 “증권사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코스피지수가 2200~230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다만 지수가 1900선까지 밀리면 2100 정도를 목표로 저가 매수에 나서려는 고객이 일부 있다”고 했다.

만기가 1년을 넘는 중·장기 예금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자산 매입 규모를 추가로 줄이면 국내 금리가 조만간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장기 예금에 돈을 묶어놓지 않으려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환매조건부채권(RP)과 양도성예금증서(CD), 3~6개월짜리 단기 예금에만 돈이 몰리는 이유다.

일부 자산가는 환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희수 신한은행 PB팀장은 “해외 투자에 적극적인 고객 중에선 지금의 원·달러 환율이 충분히 낮다고 보고 달러를 분할 매수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말했다.

조재길/김일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