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1000만 관객 돌파 '변호인' 제작 최재원 대표 "15년 영화사업…투자로 쪽박, 제작으로 일어섰죠"
가 주연한 영화 ‘변호인’(감독 양우석)이 개봉 33일 만인 19일 오전 1시께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영화 사상 아홉 번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81년 변론을 맡았던 ‘부림 사건’ 실화를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상고 출신의 세무 전문 변호사 송우석이 공안 사건 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총제작비 70억원 규모의 이 작품을 제작한 최재원 위더스 대표(47·사진)는 흥행 수익 중 100억원 안팎을 거머쥘 전망이다. 금융권 출신 투자자로 영화계 입문한 지 15년 만에 제작자로 변신해 ‘대박’을 터뜨린 최 대표를 서울 압구정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영화라고 마케팅을 한 적은 없어요. 그가 맡았던 사건을 소재로 한 픽션일 뿐이죠. 보는 내내 그 사람이 생각났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노무현을 기대하고 봤는데 아니더라는 소감도 많았어요.”

최 대표는 트위터에 쏟아진 관객들의 반응을 이렇게 요약했다. 영화를 본 소감도 연령별로 달랐다고 한다.

20대가 최고인 여느 영화와 달리 이 영화의 예매율은 40대가 가장 높았다. 40대는 자신이 청춘을 보냈던 시대에 대한 공감을 얘기하고, 30대는 직접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영화를 통해 선배들의 삶을 짐작했다고 했다.

최 대표는 “10대와 20대 중에는 이야기가 그냥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은데 이들만이 영화를 영화로 본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관객들이 각자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르다는 얘기다.

최 대표는 “대박의 꿈을 버리고 나서야 대박을 이뤄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무한기술투자 투자본부장이던 1999년 말 ‘쉬리’ 이후 한국 영화계에 부는 훈풍을 감지하고 영화계 최강 파워였던 강우석 감독, 차승재 제작자 등과 함께 115억원 규모의 영화펀드 1호를 결성했다. 정부(중기청) 자금이 들어온 첫 영화펀드였다. 이후 100억원·50억원 규모까지 3개 영화펀드를 조성해 메인투자 17편, 부분 투자 24편 등 41편에 투자했다.

투자한 영화를 관리하는 아이픽쳐스란 회사를 2000년 설립해 대표를 겸직했으나 투자 실패와 운영 미숙으로 큰 손실을 입고 2004년 도산했다. 2005년 서울 개포동 아파트를 16억원에 팔아 빚잔치를 하고 구리에 있는 월세 아파트로 이사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다른 사업가들처럼 한때 자살도 생각하다 은사 스님을 만나 불교에 귀의했어요. 돈을 벌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죠. 그래서 투자자에서 제작자로 인생을 바꿨어요. 투자 일을 하면서 봉준호 김지운 감독 등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귄 덕분이죠.”

2005년 문구업체인 바른손이 영화사업본부를 설립하면서 그는 ‘월급쟁이’ 대표로 영입돼 김 감독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봉 감독과 ‘마더’를 제작했다. 2009년에는 투자배급사 뉴의 대표로 스카우트돼 1년간 일하다가 2010년 독립해 위더스를 창립했다. ‘변호인’의 투자배급사도 뉴다. 그가 실패에서 배운 삶의 지혜가 빛을 발한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만큼 인간관계를 잘 구축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제가 재기한 비결도 사람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죠. 창의력이 중요한 영화사업은 자유로운 반면 생존 문제를 생각해야 할 만큼 불안정해요. 따라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만족해야 해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