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확 낮춘 한국감정원의 '개혁'
권진봉 한국감정원장(61·사진)은 2011년 취임과 동시에 험한 장벽에 부닥쳤다. 악화 일로의 노사갈등과 회사 수익성이 큰 문제였다. 부동산시장 침체가 지속되면서 1분기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됐고, 연말까지 매출 150억원의 감소가 예상됐다. 권 원장은 곧바로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노사협의회에 협조를 당부했다. 머리띠를 두른 노조는 “회사 경영은 경영진이 알아서 하고, 우리 관심은 근로조건과 후생복지에만 있다”고 선을 그었다. 권 원장은 “복지·후생도 회사가 살아야 존재한다. 함께 가자”며 집요하게 설득했다. 더불어 감정원의 체질개선 작업을 밀어붙였다.

최근 공기업 개혁이 화두인 가운데 권 원장의 취임 이후 3년간 경영실적과 재무구조 개선이 관심을 끌고 있다. 기존 조직의 거센 저항을 이겨내고, 공기업 본연의 업무와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게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공기관 맞아?

1969년 설립된 감정원은 토지·주택 공시가격 등 부동산가격을 조사·평가하는 ‘감정평가 전문기관’이다. 2010년까지 민간 감정평가업체들과 치열한 용역 수주 경쟁을 펼치며 조직을 유지해왔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감정평가시장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평가기준을 세우는 업무는 소홀해졌고 감정원에 대한 불신도 깊어졌다. 직원들은 공기업 기능과 감정평가법인 업무를 아우르면서 정체성 혼란까지 겪었다.

기술고시 13회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도로국장, 건설수자원실장 등을 지낸 권 원장은 30여년의 공직 생활에서 ‘원칙주의자’로 통했다. 그는 취임 첫해 민간 감정평가사업 330억원(수익의 47%)을 민간평가업계에 넘겼다. 대신 민간협회에서 맡아왔던 감정평가 타당성, 감정평가 정보체계 구축 등 정부 정책 지원 임무를 수행키로 했다. 업무 분리를 통한 공기업의 정체성 확립에 나섰다.

감정평가협회 이사 출신인 최재규 리파인감정평가 대표는 “지금까지는 감정원장이 임기(3년) 동안 잡음 없이 마치려고 했다”며 “민간 감정평가업계와 마찰을 빚어왔던 용역경쟁을 포기하고, ‘감정평가업무 관리감독’이란 공적업무에 집중키로 한 것은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해묵은 내부 인사 문제에도 손을 댔다. 전체 직원의 30%에 육박하는 감정평가사의 경우 그동안 비평가사에 비해 승진 가점, 수당과 임금 추가 지급 등 우월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 같은 조직의 안정성을 해치는 처우 불평등을 개선했다. 2012년 상반기 평가사 100여명이 제2노조를 만들자고 집단행동에 나섰을 정도였다. 이에 권 원장은 주동자와 담당 임원들을 전보조치하는 등 불합리한 조직행동에 메스를 댔다.

◆체질 바꾸니 실적 ‘쑥쑥’

권 원장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고, 공기업 입지 확보에 공감한 노조도 개혁에 동참하게 됐다.

예산 10% 절감, 인력 15% 감축(98명) 등에 이어 연차휴가보전과 육아휴직급여 폐지 등 기존의 복지수준을 대폭 축소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2010년 말 119.7%였던 부채비율이 2012년 64.8%로 낮아진 데 이어 작년에는 36%까지 떨어졌다. 지난해는 서울 삼성동 사옥 매각으로 자본이 늘었고 그에 따른 법인세(540억원) 부담 때문에 부채도 증가하게 됐다.

김재신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평가분석과장은 “정부정책 대행사업을 하는 감정원이 원가절감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줄인 건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예전에 없었던 신사업 발굴에도 적극 나섰다. 기재부에서 실시하는 재정 투입사업(500억원 이상)에 대한 토지평가를 사전에 실시하는 사전표본 평가, 보상평가 검토사업 등을 잇따라 수주해 100억원에 달하는 먹거리를 추가로 확보했다.

지난해 9월 공공기관 중 처음으로 대구혁신도시로 본사를 이전했다. 대구로 본사(345명)를 이전하면서 실시한 명예퇴직에는 한 명도 지원자가 없었다.

김진수/안정락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