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부채폭탄 해결, 기업 힘이 필요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는 김영삼 정부의 외환관리 및 금융감독 실패가 낳은 참극이었다. 느닷없이 대기업에 덤터기가 씌워졌고 돈줄을 묶는 빌미가 됐다. 부도덕 한보와 무책임 기아가 미리 쓰러져 은행 부실을 노출시키는 단초가 되긴 했다.

위기 직후에는 경제관료 책임을 묻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려났던 핵심 관료가 컴백하면서 관치가 더욱 공고해졌다. 일부 시민단체와 호흡을 맞추면서 부채비율, 출자총액, 금산분리 등 기업 돈줄을 묶는 규제를 강화했다.

‘부채비율 200%’라는 근본 없는 규제가 먼저 등장했다. 높은 부채비율은 주식시장 후진성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확정금리 예금에 돈이 몰렸기 때문에 은행은 위험관리 차원에서 기업 대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시장에서 자기자본 조달이 용이하면 차입경영으로 위험을 불러들일 이유가 없다. 김대중 정부는 ‘2년 내 200%’라는 살벌한 가이드라인으로 기업과 금융회사를 들볶았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은 계열사 주식거래를 통해 순환출자를 구축함으로써 가이드라인을 맞췄다. 당시 정부는 외국인 투자와의 형평성을 들먹이며 출자총액 규제를 풀어 순환출자를 도왔다. LG는 GS 및 LS그룹과의 분할과정에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함으로써 각종 규제를 한꺼번에 벗어났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은 자금압박에 시달렸고 투자기회를 놓치면서 폭삭 쪼그라들었다.

은행이 더 문제였다. 기업 대출처가 크게 줄어들면서 남아도는 자금이 골칫거리였다. 신용카드 확대에 사활을 걸었고 담보잡기 편한 주택구입 및 전세자금 등 가계대출에 돈을 퍼부었다. 정부 국책사업을 대신 떠안은 공기업이 채권발행을 크게 늘리자 은행이 쾌재를 부르며 대부분을 인수했다. 그 결과 작년 말로 가계부채와 공공기관을 포함한 국가부채가 각각 1000조원을 돌파했다. 연간 정부 예산의 3배에 이르는 빚더미가 가계와 국가재정 쌍방을 압박하는 공포의 ‘쌍천조(雙千兆) 투모로우’가 닥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대책 마련에 팔을 걷어붙였다. 경제 3주체 중에서 가계와 정부가 짊어진 부채를 줄이려면 기업 방향으로 돈줄이 흐르도록 선순환 통로를 열어야 한다. 기업이 창출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가계소득을 늘려야 가계부채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공기업은 자산과 사업권을 민간에 과감히 매각하고 민간기업과의 조인트벤처를 확충해 핵심사업 소요자금을 줄여야 한다.

기업가가 연구개발과 시장 개척에 매진하도록 사기를 북돋는 것이 선결과제다. 기업의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노사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산업은행 등 금융공기업이 껴안고 미적거리는 은행관리기업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매각작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은 물론 은행권이 주식을 보유해 법적제약도 별로 없는 대우조선 쌍용건설 등의 매각도 번번이 실패했다. 원매자가 많았던 대우건설마저 금호아시아나에 팔렸다 만신창이로 되돌아왔다. 선대의 뿌리를 되찾겠다는 목표가 분명했던 현대차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를 제외하면 내세울 유일한 실적은 SK그룹의 하이닉스 인수뿐이다.

멀쩡한 LG반도체를 정치인 몇몇이 나서 현대전자에 넘겼고 결국은 거대한 부실덩어리 하이닉스로 추락시켰다. 부도기업 하이닉스는 채권은행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를 짓누르는 부담이었다. 최태원 SK 회장이 기업가적 용단으로 인수를 결정했고 각고의 노력으로 주식 시가총액 3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부침이 가장 심한 반도체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대주주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에서 최 회장 형사재판에 경제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가의 사기를 높여야 투자확대를 통해 성장동력을 되살릴 수 있다. 가계와 공공부문이 과도한 빚을 뒤집어쓴 비정상 구도를 정상화시킬 최선의 대책은 성공적 기업 투자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