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배 띄워라, 노 저어라
천년도 훌쩍 넘은 기록이니 언어의 연속성에 새삼 놀란다. 신라 흥덕왕 비석에 새겨진 ‘무역지인간(貿易之人間)’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역이라는 단어엔 반가움이, 글귀의 주인공이 장보고라는 사실엔 친근함이 느껴진다. 장보고는 한국, 중국, 일본을 잇는 동북아 물류네트워크를 구축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상인들과도 교역할 만큼 활동무대가 광활했다. 해상에 상업제국을 건설한 진정한 무역왕이었던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간 것일까. 지난주 서울 강남에 청해진이 설치돼 술렁였다. ‘청년들이여, 해외로 진출하라’는 구호를 내건 글로벌 창업취업대전이 열린 것이다. 행사장은 장보고의 후예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국내외 스타트업(자체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작은 그룹 및 프로젝트성 회사)들과 해외투자가 간의 상담이 열기를 뿜었고, 해외 구인 기업들과 취업상담을 벌이는 부스마다 긴 행렬이 꼬리를 물었다. 해외진출에 성공한 선배들이 들려주는 토크쇼와 예비 해외창업가를 위한 해외창업 멘토링에도 눈과 귀가 쏠려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더 큰 기회와 시장이 열려 있는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돌아보니 여러모로 시의적절했던 것 같다. 청년실업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지난해 처음 자리를 마련한 이래 적잖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글로벌 창업취업을 위한 K-Move센터를 가동했고, 터키에서는 취업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성과 여부를 떠나 일자리를 찾는 눈을 해외로 돌려보도록 인식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꿈에 불을 지피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 보람을 느낀다. 그 누가 알랴. 행사장을 찾은 청년인재들이 미래의 글로벌 시장을 주름잡는 ‘하이퍼 노마드(Hyper Nomad)’가 될지를.

하이퍼 노마드란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가 사회계층을 분류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다. 새로운 시장과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글로벌화를 선도하는 계층을 의미하는데, 상품과 자본의 교역을 넘어 인재교류의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 열리고 있는 지금 시점에 가장 적합한 존재들이 아닌가.

팽팽하게 당겨진 돛을 높여 대양을 항해하던 장보고의 범선이 눈앞에 그려진다. 글로벌 DNA로 충만한 21세기 무역지인간들의 꿈과 끼를 실은 돛단배들이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북소리 울려 배를 띄워라, 어기영차 노를 저어라.

오영호 < KOTRA 사장 youngho5@kotra.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