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마다 연말이 되면 지인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고 윗분에게는 연하장을 올린다. 연말에 서신을 통해서라도 인사를 하고 안부를 여쭙는 일은 뇌물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세상의 소박한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가 우체국 사서함인 세 통의 연하우편을 최근에 받았다.

보내는 사람이 자신의 주소를 우체국 사서함으로 쓴 것은 교도소에 수감돼 있기 때문이다. 춘천우체국 사서함이 보내는 사람 주소면 춘천교도소에서 온 것이고, 안양우체국 사서함이 보내는 사람 주소면 안양교도소에서 온 것이다. 해가 바뀌는 연말이면 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하는데 내게는 ‘불우이웃’이 보육원의 고아나 요양원의 치매노인이 아니라 내가 만난 수많은 재소자이다. 소년원과 구치소 수감자를 제외하고는 내가 만난 사람은 대개 장기수였다.

“담 안이어서 추위가 사람을 동태가 되게 합니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교수님께서 주신 마음은 지금도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신문을 보면 경제가 어렵다는 기사가 늘 지면을 가득 메우니 격절의 공간에 있는 저희는 더욱더 움츠러드는군요.”

몇 번의 만남이 끝나는 날, 나는 꼭 학교 주소를 가르쳐주면서 시를 써서 보내주면 편지로라도 첨삭지도를 해드리겠노라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없고 시 쓸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서 시를 보내오는 편수는 줄어들지만 계절이 바뀔 때나 해가 바뀔 때, 안부를 물어오니 반갑고 기쁘다. 나도 뭐 대단한 내용으로 답장을 해줄 수는 없다. 좌절감을 떨쳐버리고 용기를 내시라,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마시라, 출소 이후 보람된 삶에 대한 꿈을 키우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시라….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꼭 만년필로 편지를 쓴다. 편지와 함께 책을 몇 권 보내는 것 또한 철칙으로 삼고 있다.

법무부 사회복귀과에서 발간하는 계간지 ‘새길’이 2013년 겨울호로 424호를 발간했다. 2012년부터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재소자들의 문예작품을 심사하고 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이 너무 많아 원고보따리가 집에 택배로 오면 며칠은 웃음을 잃고 계속 한숨을 내쉰다.

잊혀지지 않는 사연들이 있다. 조직폭력배의 똘마니가 됐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참회하는 내용으로 쓴 편지를 읽은 검사가 있었다. 검사는 죄인에게 죗값을 치르게 했지만 임신한 죄인의 아내가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죄인을 불러다 격려를 하고 교도소로 격려편지도 보내준다. “저뿐만 아니라 아내와도 수시로 통화를 하시고 아이가 태어날 쯤엔 배냇저고리도 선물해 주셨습니다. 긴 재판 동안 검사님께서 아내와 제게 힘이 되어주신 덕분에 잘 견뎌내고 합의도 하여 이제 2년 정도 남게 되었습니다.” 검사에게 고마워하는 재소자는 참으로 드문데,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교도소 안에서도 펼쳐지는 것이다. 교도계장, 교도과장 등 교도관들에게 고마워하는 내용의 수필도 종종 읽게 된다. 외국영화를 보면 교도관은 대개 무시무시한 인물로 그려져 있는데 내가 읽은 재소자들의 수필 속에 나오는 교도관들은 재소자들의 개과천선에 큰 힘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도 희미하게나마 외로운 그분들에게 시라는 등불을 비춰주고 싶다.

“시 공부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군요. 교수님이 주신 잡지 등 다양한 시집을 통해 언어의 조탁을 해보지만 가슴속에 울림은 잘 일어나지 않네요. 시는 은유라는데, 연유를 연결시키는 고리는 찾지 못하고… 그간의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행복한 날들 되시기를 빕니다.”

나야말로 이분의 생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기를 바라며 부쳐드릴 책을 챙긴다.

이승하 < 시인·중앙대 교수 shpoe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