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3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 회의장.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굳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오바마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 자리에 나를 가지고 놀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며 “만약 사실이라면 그 결과는 무서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일순간 회의장은 고요해졌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추진하는 과정에 방해 세력이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그 세력이란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군사령관, 마이크 뮬런 합참의장 그리고 나를 겨냥한 말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대통령이 자신의 군사령관을 믿지 않고 있구나.”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오는 14일 출간될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사진)의 자서전 ‘임무, 전장에 선 장관의 회고록’의 일부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낙마시켰던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기자가 7일(현지시간) 회고록의 내용을 사전 입수해 보도했다. 회고록에서 게이츠는 오바마의 리더십과 아프간 전략에 대해 작심한 듯 맹공격을 퍼부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스스로 자신의 전략을 믿지 않았고, 자신의 전쟁이라고 여기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전쟁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했다”고 비판했다.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때인 2006년 국방장관에 임명된 게이츠는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도 연임해 2011년 6월까지 국방장관직을 수행했다. 우드워드는 “공화당원이지만 비당파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게이츠 전 장관이 군 최고 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박병종 기자 ddak@hankyung.com